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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및 칼럼

[세상 읽기] 인권문제, 실효적 대북 압박수단 될까?

(한겨레신문, 2018.2.19) [세상 읽기] 인권문제, 실효적 대북 압박수단 될까?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전환을 마련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방북을 초청받았고, 압박 일변도였던 미국도 대북정책을 조정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와 펜스가 북한과의 대화 여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런 행보가 우리에겐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미-북 간 대화와 관계 개선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을까? 개막식 참석 이후 귀국한 펜스는 ‘동시적인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말로 대북정책의 기조 전환을 내비쳤지만, 대통령과 부통령의 말 한마디에 미국의 대북정책이 최대의 압박에서 관여로 방향을 틀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선 북한보다 미국의 속내를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북한과의 문제에서 속도와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사실상 미국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80분에 걸친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에 7분이나 할애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북한은 1차례의 핵실험과 13번의(3번의 실패 포함)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북정책은 최대의 압박이었다. 미국 주도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도 2017년에 4번(2356호, 2371호, 2375호, 2379호)이나 된다.

트럼프는 연두교서에서 북핵 저지를 강조하면서 새롭게 북한 인권을 부각했다. 목발을 흔드는 탈북자 지성호의 등장으로 즉석 연출까지 더해진 국정연설이었다. 인권을 새로운 대북 압박 수단으로 쓰겠다는 트럼프의 정책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펜스는 서울에서 웜비어 부친과 탈북자들을 만났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워싱턴과 서울에서 탈북자를 만난 일이 일회성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이는 관여 차원에서 미국이 북한과 탐색적 대화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압박과 제재에 인권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추가할 수 있다는 사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6 북한이탈주민 정착 실태조사’에 나타난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를 보면, ‘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이 전체의 45.2%, 그다음이 25.7%로 ‘돈을 더 많이 ** 위해서’였다. 물론 자유를 찾아 탈북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유보다 ‘배고프고 돈이 필요해서’ 북한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을 인권문제로 규정하고 새로운 압박카드로 쓸 때, 생존권적 인권도 보장 못 받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더 심화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탈북 동기를 오히려 더 키우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중국도 개혁개방 후 온포(溫飽)문제가 해결되면서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개혁개방으로 생존권 문제가 해결돼야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따라 자유권적 인권도 개선된다. 선언적·추상적인 ‘밖으로부터의’ 압박으로 북한 인권은 개선되지 않는다. 17일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뮌헨안보회의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향후 인권문제를 새로운 대북 압박카드로 추가할 가능성이 있고, 이 문제를 두고 한-미 간에 입장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북핵정책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이미 설치됐어야 할 북한인권재단이 아직 출범조차 못 한 상황에서 미국이 인권문제로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한-미 간 북한 인권 정책 조율과 국민적 이해 증진, 나아가 북한 인권의 실효적 개선을 위해서 북한인권재단의 출범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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