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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및 칼럼

[서소문 포럼] 사람이 먼저인 나라, 정상회담에 인권은 왜 없나

 

트럼프·아베는 김정은 만나기 전 억류자 석방 내거는데
납북자·억류자·탈북자 인권 유린 앞에 둔 우리는 조용

김수정 정치국제담당

김수정 정치국제담당

 두만강 얼음물을 가슴팍으로 밀며 아버지는 왔다. 딸은 펜치로 국경의 철조망을 끊어냈다. 딸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그제야 비닐에 싸서 입속에 물고 온 독약을 뱉어냈다. 보위부에 체포되면 *어 터트릴 셈이었다. “이젠 살았다 싶었죠. 저는 서울로 오고, 아버지는 브로커를 따라 제3국(중국에서 서울로 오는 경유국)으로 갔어요. 국경 근처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는 연락이 왔고, 그 후론 생사를 몰라요. 10살 때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형제들을 장마당에 내다 버리지 않고 힘들게 키워주신 아버지예요.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 갑니다.”  
 
 6년 전 먹고 살기 위해 탈북한 스물아홉살 김주연(가명)씨 얘기다. 차례로 탈북한 3형제가 돈을 모아 브로커를 통해 아버지를 남한으로 데려오다 생긴 일이었다. 가족들이 강제 북송되고 처형돼 홀로 남은 탈북 동료들을 보며 그는 지난 14개월 동안 하루가 멀다고 청와대·국회·외교부·통일부·중국 대사관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컸어요. ‘사람이 먼저’란 말에 감동했거든요. 작년 5월 13일 문 대통령이 사저 홍은동에서 청와대로 가는 날 새벽 5시부터 기다렸어요.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억류된 탈북자를 구해달라고, 북송 안 되게 해달라고 쓴 편지를 필사적으로 경호하는 분께 전했어요. 그분이 제 편지를 들고 대통령님과 한 차에 타고 가셨는데 그게 끝이었어요. 그 후에도 편지를 수십통 보냈습니다. 우리 얘기를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고, 어떤 행사에서도 탈북자나 북한 주민의 인권 얘기는 없었죠.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요.”  
 
 김씨는 최근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평양 귀족들을 모아 놓은 공연에서 김정은과 이설주가 웃고 있더라고요. 살려고 나온 사람들을 붙잡아 처형하고,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화재현장에서 탈출하면 제 목숨만 살아 나왔냐고 비판해 제 발로 불구덩이로 다시 들어가는 지옥을 만들어 놓고….” 
 
“이젠 악만 남아 말이 험하게 나온다”며 앳된 얼굴의 그는 울다 웃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코앞에 왔고 이어 열릴 북·미 정상 간 담판 기운도 달아오르고 있다. 핵 보유를 선언한 북한 김정은이 중국·한국·미국의 정상들과 악수하며 국제무대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대전환기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벌이는 체스판에서 내건 게 있다. 인권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북한이 억류한 미국인 3명(한국계)의 석방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아베 일본 총리의 청을 받아들여 “납북 일본인 문제도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제기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욕타임스는 “회담에 앞서 미국이 북한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회담의 전제 조건이라는 얘기다.  
  
  인권 개선은 정상국가연 하며 나오는 독재국가에 내주는 기본적인 숙제다. 더욱이 자국민 억류자 석방 요구는 국가의 기본 의무에 속한다. 그런데 억류된 국민이 가장 많고(2013년 이후만 6명), 6·25 전쟁 전후 억류된 국군 포로와 어부 등 수백명의 납북자 생사 확인도 못 하고 있는 한국은 조용하다. 이번에도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만 제기한 것 같다. 북한 인권을 정상회담 의제로 상정하라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대표 김태훈) 등 40여개 단체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들린다. 
 
 인권은 시대와 진영, 체제를 초월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특수성을 거부하고 진보 세력 등이 권위주의와 싸워 이뤄낸 업적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인권을 응당 얘기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빅 카드는 인권 개선이고, 그게 바로 실질적인 체제 보장의 길”이라고 북한을 설득하라.
 
정상회담에서 이런 깜짝 발표문이 나오길 꿈꿔 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1차로 억류 한국인 6명을 석방하기로 했다.” 27일 남북 정상회담, 그 화려한 방송 생중계를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릴 이들을 생각한다.
 
 
김수정 정치국제담당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사람이 먼저인 나라, 정상회담에 인권은 왜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