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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및 칼럼

[북한읽기] ‘대북 지원의 代父’마저 억류한 北

[북한읽기] ‘대북 지원의 代父’마저 억류한 北

반인권적 인질 외교 벌여온 北… 340억 지원한 동포 목사 억류
"변화 시도 말고 지원만 하라" 대북 지원 단체들에 경고한 것
남북 접촉 무작정 나서기보다 억류 목사 석방 촉구부터 해야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비극은 북한 정권의 반(反)인권적 속성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웜비어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는 다수의 외국인이 억류돼 있다. 그중엔 처음부터 북한 당국의 기획 공작에 의해 붙잡혀 있는 사건도 있다. 북한에 억류되는 대부분 외국인은 적절한 용도로 사용될 목적으로 죄가 만들어진다.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북한 정권의 이른바 '인질 외교' 때문이다. 북은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외교적 협상 수단으로 써먹는 이 잔혹한 방식을 자신들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고 있다.

2009년 미국 커런트 TV의 로라 링, 유나 리 기자가 취재차 국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가 북한 국가안전보위성에 입수됐다. 당시 해외 반탐(反探·방첩) 담당 류경 부부장은 이들을 유인해 억류할 계획을 세웠다. 두 여기자를 안내하는 조선족 브로커는 보위부에 매수된 사람이었다. 이미 매복해 있던 북한 보위성 요원들과 경비대 군인들이 두만강 국경에 나타난 두 사람을 체포해 북한으로 끌고 갔다. 북은 두 여기자를 이용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이끌어냈고, 김정일은 클린턴과의 회담을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주도한 류경 부부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지금 북에 억류된 외국인 가운데 가장 억울한 사람은 2015년 1월 북한에 들어갔다가 억류된 캐나다 한인 임현수 목사일 것이다. 그는 1997년부터 100번 넘게 북한에 드나들며, 약 3000만달러(340억여원)어치의 현금과 물품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 임 목사를 북한은 갑자기 억류하더니 온갖 모욕을 다 주고 있다. 그에게 국가 전복 음모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뒤집어씌우더니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가운데) 목사가 2015년 12월 16일 평양에 있는 북한 최고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이날 임 목사는 국가 전복 음모 등의 혐의로 종신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AP 뉴시스


그의 억류 이유를 놓고 그가 북 권력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세력과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또 미국의 대북 압박을 피하는 우회 통로로 캐나다를 택했고, 이를 위한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임 목사를 붙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이유보다 대북 지원 단체들 사이에선 '대북 지원 분야의 대부(代父)격'인 그를 무자비하게 체포함으로써 다른 단체와 개인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북을 변화시킬 마음으로 북에 다가서는 이들에게 '딴생각은 하지 말고 지원만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는 것이다. 2년 반 가까이 북에 붙잡혀 있는 임 목사는 밖에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고초와 고통, 공포를 겪은 듯하다. 북 당국은 임 목사를 몇 차례 공개 기자회견장에 세웠는데 평소 호탕한 것으로 알려진 임 목사가 북 당국에 쩔쩔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 목사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 운동에 서명한 사람은 지난달 현재 18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임 목사는 지금 이 순간 세계 어느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동토(凍土)의 감옥에 갇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적잖은 대북 지원 단체들이 북한과 접촉을 재개하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통일부도 남북 접촉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임 목사 억류 사태는 대북 지원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북한 정권이 원하는 방식으로 북을 돕는다면 현재 북한 체제상 정권 유지에만 이로울 뿐, 주민에게 돌아갈 혜택은 거의 없다. 북한 정권이 정해놓은 규칙을 그대로 지키면서 '지원을 위한 지원' 사업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해서는 '가짜 대북 지원'만 가능하다. 대북 단체들은 서둘러 북으로 달려갈 게 아니라 한때 대북 사업을 했던 임 목사의 석방을 먼저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대북 지원·협력 사업이 정상화되는 첫걸음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3/20170703028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