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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권

변화의 기피
(국제)인권법은 특정 경제체계 혹은 영양학적 식량 생산 전략을 처방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가 선택할 때는 국제인권법에 의거하여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한다. 조사위원회는 경제적·사회적· 문화적 권리위원회와 동일한 견해를 갖는다.

각 국가는 자신의 접근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모든 국가는 국민이 기아에서 벗어나 적당한 식량을 섭취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그런 목표를 규정하는 인권 원리에 기초하여 모든 국민에게 식량과 영양 안전성을 확보해줄 국가 전략 및 그에 부응하는 정책과 목표를 채택해야 한다. 국가는 또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 및 그 자원을 사용할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적당한 식량에 대한 권리에 관해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는 국가 식량 전략이 지켜야 할 인권 원리를 규정하였다. 

식량에 대한 권리를 형성하고 시행하는 것은 신뢰가능성, 투명성, 국민 참여, 분권화, 입법 역량 및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원칙에 완벽히 부응할 것을 요구한다. 빈곤을 퇴치하고 모든 이에게 만족스러운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을 포함한, 모든 인권을 실현하는 데는 선정(good governance)이 필수적이다.

2009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에서 북한 당국은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시장이 해체되고, 1990년대 중반 시작된 일련의 자연 재해에 의한 엄청난 재정적, 경제적 손실은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심각한 난관을 초래하였다. 가장 심각한 난관은 식량 공급 조건의 악화였다. 1996년 한 해 동안 식량 318만 톤의 공급이 부족하여 배급량을 크게 감소시켰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일반적인 건강상태가 악화되었다. 유아 및 아동 사망률이 증가하고 유아 설사, 호흡기 감염 및 결핵이 발생하였다.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요인들이 식량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하지만, 기근의 원인을 오로지 이런 요인들에게만 돌림으로써, 북한은 적당한 식량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실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체계를 국민들에게 강제해 온 리더십의 책임을 묵과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인 북한 당국이 이 체계의 명백한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북한은 그 농업을 강도 높게 산업화하여 산업적 생산품과 연료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길을 택하였다. 이로 인해 북한의 농업은 외부에서 투입되는 요소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그런 요소들 중 대부분을 북한은 1990년대 초기까지 우호적인 외국으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받아들여 왔다. 북한 농업 생산에 대한 계량경제학적인 분석 결과, 헤더 스미스(Heather Smith)와 이핑 후앙(Yiping Huang) 등의 학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위기를 촉발시킨 가장 큰 요인은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블록과의 무역이 교란되면서 농업 투입 요인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 북한 정책 결정자들이 강조하는 기후적 요인이 농업에 미친 영향은 부차적인 것이다.
 
북한은 매년 심한 폭우와 태풍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위원회와 면담한 몇 몇 전문가들은 농업 정책이 이렇게 통상 일어나는 자연재해의 영향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경작할 땅을 넓히기 위해 숲이 파괴되고 산이 계단식 밭으로 바뀌어졌다. 연료의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나무를 잘라 에너지원으로 썼다. 이 상황은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를 일으키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토양이 침식되어 하상에 충적되면서 비교적 약한 비에도 홍수가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토지를 집약적으로 이용하고 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토양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조사위원회는 비료의 과다 사용으로 북한의 경작 가능한 땅이 점점 더 빠르게 감소하였다는 증언을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다.

북한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국가의 더 큰 책임은 이렇게 어마어마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고도로 집단적인 농업 체계를 포함하여, 이 경로를 계속 유지해나가려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 있다. 이 체계를 개선하고, 농장원들에게 더 많이 생산하게 하기 위한 유인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저명한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는 북한의 농업 시스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농장을 강제로 국유로 전환한 것은 거의 모든 공산주의국가의 공통된 특징이지만 북한 국영 농장에는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장원들에게는 아주 작은 텃밭 정도만 가꿀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에서는 보통 농부들이 자기 경작지를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그 면적이 1,000㎡를 넘기도 했는데, 김일성 시기 북한에서 개인 경작지는 100㎡를 넘을 수 없었으며, 그만한 경작지조차도 모든 농장원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수입이나 식량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농장원들은 당국의 밭을 경작하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논문에서 란코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만일 북한 당국이 1990년대 중국이 했던 것과 같은 노선으로 토지 개혁을 하였다면 단 한 사람의 북한 주민도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중국은 북한의 협동농장에 해당되는 국영 농지를 모두 해체하여 농부들에게 분배하였다. 중국 농부들이 자기 소유의 땅에서 일하기 시작하자 국가의 농업 생산은 급속히 증가하였다. 토지 개혁을 시행한지 5~6년 만에 중국의 식량 생산은 1.3배로 늘어났다.

이와 대단히 유사한 결론이 서울 공청회에서 농업 전문가 김영훈 박사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북한의 협동 농장은 농장원에게 인센티브가 전혀 없는 대단히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사위원회가 농장원이었던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에게서 받은 증언들 역시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개인 농지 면적의 증대 등 당국이 주도한 개혁이 시작되긴 했지만, 체계의 기본적 원리는 거의 변화되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은 식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체계를 근본적으로 구조조정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초점을 특정 위기 관리에만 두었으며 여전히 북한 당국이 상황을 통제하려 해왔다. 대규모 기아가 최악이었던 시기 이래 북한의 경제 및 식량 상황이 나아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주로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었으며, 북한 당국이 주도한 개혁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일반 시장을 수립했던 것조차 1990년대 중반 생겨난 비공식적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시장은 북한 당국의 최대 딜레마이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혐오하며 아마도 두려워하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을 폐쇄할 수는 없다.”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를 꺼려하는 태도의 기저에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워싱턴 공청회에서 앤드류 내치어스 씨는 김일성이 했던 말에 대해 언급했는데, 여기서 북한 당국의 정치적 계산을 읽을 수 있다.
“기근이 시작되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당국은 알고 있었고, 주민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덩샤오핑이 김일성에게 서구에 문호를 개방하고, 시장 경제로 이행하며 경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자 김일성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창문을 열면 파리들이 들어올 것이다… 파리들을 들이면 경제는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김정일이 선포한 내용 역시 북한은 고통 받는 주민의 현실보다는 정치적 권력과 이념을 우선시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에서 이미 대규모 기아가 진행되고 있던 1995년 발표된 논문에서 김정일은 이념이 최우선임을 강조하였다:

이념의 보루가 무너지면, 사회주의는 아무리 경제적 및 군사적 힘이 강하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달성에 있어서 이념이 엄청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1996년 12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김정일은 구조적 개혁을 하기를 거부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정치체계와 리더십을 보호하고 동유럽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유형의 대중 시위를 예방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하였다. 김정일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식량의 문제는 사회주의적 방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당이 사람들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농장원과 상인들만 잘 살게 될 것이고 이기주의가 팽배할 것이며 계급 없는 사회의 사회적 질서는 붕괴될 것이다. 그러면 당이 인민의 기반을 잃게 되어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와해를 겪게 될 것이다.

2009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에서 북한 당국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정책을 추구한다. 국가는 식량행정법, 노동법, 식량분배의 규칙에 의거하여 값싸고 시기 적절하며 평등한 식량을 모든 노동자, 사무 노동자 및 그들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래 거듭해서 국가를 강타한 심각한 자연재해로 인해 곡물생산이 크게 감소하면서 국민들 생활 전반 및 특히 적절한 식량에 대한 그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정부는 국제적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하여 다량의 식량을 획득, 긴박한 수요에 부응하는 한편 농업 생산량을 증대하여 자국의 힘으로도 식량문제를 해결할 조치를 취해왔다.

2012년 6월, 북한 당국은 일련의 경제개혁을 단행하였다고 한다. 이 개혁에 대해 조사위원회는 제한된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우리식 경제관리체계(Economic Management System in Our Style)”라는 표제로 공표된 이 개혁의 주된 개념은 운영권을 당국으로부터 개별적 공장, 사업장, 농장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농업 부문에 관한 한 농장원들은 전체 경작의 70%를 주고 30%를 자신들이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당국이 한 해 수확량에 관계 없이 일정량의 식량을 거둬갔다. 새로운 계획하에서는 당국의 몫이 각 농장에서 수거된 생산량의 5년치 평균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확이 많은 해에는 농장원들이 더 많은 몫을 갖게 될 것이고, 수확이 줄어들면 더 적게 갖게 될 것이다. 위원회는 개혁의 성과 혹은 개혁이 실제로 어느 정도 시행되었는지 평가할 수 없다.

2014 신년사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경제 사업의 지도와 관리에 있어서 결정적인 개선”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농업 개혁과 경제 개방을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북한 외부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하여 앞서 말한 경제개혁에 대해 연구했던 농업 전문가 김영훈 박사는 그것이 뚜렷한 개선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김정은 정권 역시 (김정일과 마찬가지로)자본이 부족해서 체제 개혁이 진행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 평양대학교 연구원이었던 또 다른 농업 전문가는 새로운 체제하에서도 역시 수확의 70% 이상을 국가에 바쳐야 하므로 농장원들은 더 많이 생산할 유인이 없다. 뿐만아니라, 북한이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을 효율적으로 증대시키는 데 필요한 새로운 기술에 접근할 수가 없다.
안드레이 란코프는 이 개혁이 불확실성에 가득 찬 것이었지만, 첫 번째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최근 북한을 방문한 중국 전문가가 이 개혁이 실시되자마자 생산량이 30% 증가하였다고 말하였다는 점을 들었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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