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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권

대안적 견해의 차단 및 처벌
주민들, 특히 농장원들과 대화를 하고 참여적 접근법을 채택하여 식량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 하는 대신, 북한은 위기 기간 내내 이념적인 세뇌 공작을 통해 비판을 미리 배제하려고 하였다.

1991년 당국은 “하루 두 끼 먹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중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수사를 붙여 점점 심해져 가는 경제적 궁핍을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이 대안적 경제 체계에 대해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 상황의 근저에 자리하는 정치적 이유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인 발언도 정치적 범죄로 간주되어 가혹하게 처벌되었다.
  • 한 증언자는 당국이 결국에는 주민들이 식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계속 약속했으며, 심지어 위대한 지도자조차 음식을 넉넉히 드시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사람들은 식량 상황에 대한 정기적인 강연에 강제로 참여해야 했으며, 그러는 사이에 실제로 식량이 지급되는 것은 연기되고 있었다. 이런 강연의 내용은 특히 주민들이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가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또 다른 증언자는 기근 동안 북한 주민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의무적 강연과 교육이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종종 강제로 부과되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걸 버텨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질 테니까요.”
북한은 또한 조국이 견디고 있는 역경의 원인 제공자로 외국 세력, 특히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였다. 
  • 고위직 관료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당이 말하는 것을 모두 곧이곧대로 들어, 북한이 식량 결핍에 시달리는 것도 “자본주의 국가가 북한에 제재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 런던 공청회에서 김주일 씨는 남북한 사이의 비무장지대 가까운 곳에서 군인들은 종종 한국 국민이 휴전선 가까운 곳에서 풍선에 실어 보내는 라디오, 쌀, 설탕이 든 삐라를 발견하곤 하였다고 말하였다. 군인들은 한국에서 보내는 것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병에 걸려 “살이 썩어 들어가게” 된다고 세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국의 정책과 프로그램에 대해 이견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다. 조사위원회는 체제의 심각한 비효율성 및 이를 개혁할 필요성에 대해 알면서도 그 사안을 논의할 수 없었다는 증언을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로 인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생길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전직 평양 대학의 연구원의 말에 따르면, 북한 당국 관료들은 협동 농장 체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지만, 진정한 개혁이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황에 좌절감을 느껴 최고지도자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에 그는 협동 농장과 개인 농장의 생산성을 비교하고 후자가 전자보다 5배 더 생산적이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이런 연구결과를 입증하는 문헌들도 첨부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협박을 당하였다.
“3개월 후 중앙당 요원이 찾아 왔습니다. 그는 저보고 학문이나 하지 정치에 참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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