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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권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접근의 방해
사회권규약 제2조제1항과 제11조제2항에 의해 모든 국가는 개인에게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 국제적 지원과 협력을 가능하게 해주어야 한다. 만일 한 국가가 주민에게 적절한 식량을 제공해주지 못하면, 그 국가는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주민들이 기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외부의 지원을 모색하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에 의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이유로 인해 국민들에게 기아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그것이 사실임을, 그리고 필요한 식량에 대한 가용성과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제적 지원을 얻으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가들은 또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자의적으로 거부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주의적 지원을 자의적으로 거부했는지 판단하는 데는 몇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정당한 근거를 대지 않고 지원을 거절하거나 제시된 이유가 사실의 왜곡(예를 들면 적절한 평가 없이 인도주의적 지원 필요성을 부인한다든지)에 기초한 것일 경우, 국가는 자신의 의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국제적 의무와 부합하지 않는 이유로 접근을 거부할 경우 그것도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방식으로는 필요한 지원을 확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애, 공정성, 중립성, 독립성이라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부합하여 제공되는 지원을 국가가 거부할 경우, 그 국가는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식량 지원을 인도주의적 수요에 입각하여 차별 없이 지원을 분배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용도로 전용하는 것도 자의적인 지원 거부이며 따라서 식량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1990년대 중반 구호단체가 처음 도착한 이래 국제기구와 민간단체는 북한 당국이 부과한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해왔다. 조사위원회는 북한 당국이 인도주의적 활동가들에게 인도주의적 입장이나 안보에 대한 고려에서 볼 때, 전혀 합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동 및 접촉을 제한하여 이들의 접근을 부당하게 방해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은 지원 기구들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용의주도하게 방해해왔다. 이런 자료들이 제공되었다면 인도주의적 대응의 효율성을 크게 증대시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북한의 동북부 지역에 지원을 제공하려는 국제 구호기구의 초기 요청에 불응하였다. 세계식량계획의 구호 물자는 1997년이 되어서야 동해안에 도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말에는 세계식량계획의 구호물자 중 5분의 1 정도만이 북한 총 인구의 3분의 1이 존재하는 지역으로 갈 수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위원회는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기근이 심한 어떤 지역에는 정치범수용소와 민감한 군사시설이 있는 곳이 있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성분’이 낮은 사람들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 전체에 인도주의적 접근이 거부당하였다는 사실도 주목한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는 Exhibit W-2는 1995년에서 1996년 동안 다수의 북한 주민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북부 지역에 북한 당국이 인도주의적 접근을 거절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접근할 수 없었던 4개 도(함경남·북도, 양강도 및 자강도)는 중앙배급체계 분배가 가장 먼저 중단된 지역이기도 하다.

1995~1996년 기간 중 접근 가능 및 불가능 지역

북한이 해외원조를, 그것도 “적”으로 간주되었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종종 주민의 고통보다 그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작용한다.
  • 워싱턴 공청회에서 앤드류 내치어스 씨는 조사위원회에 미국이 제공하는 지원의 전달과 관련한 문제점을 이야기하였다.“북한의 항구에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함선에 꽂힌 미국 국기를 내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배는 선장이 배에서 미국 국기를 내릴 수 없다고 하여 항구에 사흘 동안 정박해 있었다고 세계식량계획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단순히 이미지의 문제만 가지고 말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중앙 당국은 이 항구로 어떤 물자도 보낸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미국이 이 사람들을 다 구제해 줄 거라는 생각이 정치 당국에게는 상당히 거슬렸던 거죠.”
북한의 인도주의적 활동가들에 대한 제약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인도주의적 협약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 옥스팜(Oxfam), 케어(CARE), 세계의 의사들(Médecins du Monde: MDM) 등 신뢰할 만한 인도주의 기구들 다수가 북한에서의 활동을 중지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이 부과한 조건하에서는 활동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2년 당시 국경없는 의사회의 연구실장이었던 피오나 테리(Fiona Terry) 씨는 자기 단체와 같은 인도주의 기구가 북한에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오늘날 북한에는 인도주의적 특성의 공간이 전혀 없어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식량 지원이 기근을 해결해주는지 아니면 지구상 최고의 스탈린식 독재국가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유지시켜주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그 의도를 보나 -주요 기부국의 의도가 이 지역의 안보를 위해 북한 당국이 갑자기 붕괴되는 것을 막는 것이므로- 방법론을 보나 “인도주의적” 성격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물리적으로 다가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활동가들은 그들의 활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상황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었다. 분명히 지원이 가장 취약한 주민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문제에 직면한 다수의 인도주의 단체들은 “접근할 수 없으면 지원도 없다”는 정책을 채택하여 어느 정도는 지원 분배를 모니터할 수 있도록 접근상황이 개선되기도 하였다. 

세계식량계획이 접근할 수 있는 군의 수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해왔다. 세계식량계획이 2013년 제공한 최신 지도(다음 그림)는 이제 약 200개의 군 중에서 82곳에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강도와 함께 급성 영양실조 및 발육장애 면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자강도에는 세계식량계획의 활동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WFP의 활동 현황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는 모두 북한에 농촌 및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과 아동 같은 취약계층에게 식량 지원 및 기타 국제적 원조가 닿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북한과 같은 상황에서는 임산부나 수유부, 아동, 노인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고려된다. 하지만 조사위원회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식량 지원 및 기타 인도주의적 원조가 대상 집단에 도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조사위원회는 북한이탈주민, 북한에 파견되었던 인도주의 단체 직원, 기타 정보원으로부터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비롯하여 가장 지원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2000년 빈곤퇴치활동(Action Against Hunger, AAH)은 북한 당국이 가장 취약한 아동들에게의 접근을 금지했기 때문에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빈곤퇴치활동은 이 결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AH는 모든 방문 전에 통보를 했지만, 실제로 [빈곤퇴치활동의 지원을 받은] 그런 시설에 있는 어린이의 수는 공식적으로 인용된 것보다 적었다. 유엔아동기금, 세계식량계획, 유럽연합이 실시한 영양조사에 의하면 북한 아동의 16%가 영양실조라고 밝혀졌지만, 이런 시설에서 확인된 영양실조 아동은 약 1% 정도였다. 우리 팀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아동 영양실조 사례는 그런 시설에 갈 수 없는 아동에게서 나타났다. 특히 타격이 큰 집단은 “거리의 아이들”로, 많은 아이들이 3~4세 사이로, 보기에도 대단히 약한 가운데 혼자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기 위해 싸운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이 운영하는 시설을 통해 들어가는 지원은 가장 취약한 집단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빈곤퇴치활동은 북한 당국에게 공식 시설 외부에 고위험 집단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급식소를 설치하자고 협상하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한 조건은 북한 당국에 의해 거절당했다. 우리는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국제적 지원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달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가장 가난한 가정을 방문하는 권한은 거절 당하였는데, 이런 가정에서는 아동들이 집 안에만 박혀 있어 지원을 받지 못하고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아동에게 적절한 지원이 미치기만 한다면 쉽게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혐오스러운 상황이다.”

1998년 국경없는의사회는 “고위급의 정책 변경으로 인해 효율적인 인도주의적 지원이 더욱 제한되었기 때문에 지원을 원칙에 입각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하면서 북한에서의 활동을 중단하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집이 없거나 고아가 된 아이들과 같이 특별히 취약한 집단을 대상으로 활동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의학적·영양학적 지원을 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의약품 원료 제공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상이한 시점에 북한에서 근무했던 인도주의 단체의 직원들이 조사위원회에 제공한 증언에 의하면, 과연 그들이 접근하도록 허용된 지역 안에서조차 그들이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제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의심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문이 “잘 연출된 공연”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이들은 북한에 주어지는 그 다량의 지원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국제적 지원의 제공자들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금지해왔다. 북한에서 계속 활동하기로 결정한 인도주의 단체들은 북한 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물리적으로도 접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WFP와 같은 국제적 구호기구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두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대신 북한 당국이 제공하는 그 지역의 북한 주민이 통역을 하였다. 그런 직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명백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제공된 현지직원들은 지원 활동을 관리하는 구체적인 기술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업무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북한 아동들의 영양 상태에 대한 무작위 조사를 실시하게 해달라는 유엔의 요청도 반복적으로 거부되었다.
  •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서 근무했던 앤드류 내치어스는 워싱턴 공청회에서 1990년대 북한에서의 미국 국제개발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근 초기, 북한 사람들은 우리들이 아동의 상태를 측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표본 조사대상지’도 북한 당국이 정했는데, 그러면 정확한 조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안 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게 하면 쉽게 정치적 의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정확하지 않 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국제기구에 지나치게 협조적이었다 해서 직위에서 파면된 지방 관료들도 있었다고 한다. 1998년 국경없는의사회는 북한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효율적이고 신뢰할 만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자급자족이 라는 이념을 지키고자 하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어떤 관찰자들은 인도주의 단체들이 북한 내부에서의 접근 및 모니터링을 한다는 측면에 있어서 지난 몇 년간 상황이 좋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인도주의 기구들은 점차적으로 더 많은 군들에 접근해갈 수 있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떤 단체에게는 북한이 지정해준 통역이 아닌 통역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식량 지원 모니터링 분야에 있어서 작은 진보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인도주의 단체들이 북한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인도주의적 활동가들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접근을 방해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약에 여전히 직면하곤 한다. 북한 담당 유엔 국가팀에 의하면, 활동의 제약으로 인해 기부자의 신뢰와 자원 동원에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더 나은 활동 조건에 대한 논의를 저해한다. 북한 내 접근에 대해 협상하는 것은 길고도 어려운 과정이다. 인도주의 기구들의 프로그램 이행, 모니터링, 활동 평가를 수행하기 위한 접근에 당국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약들을 자주 가하고는 한다.

 [출처: 2014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통일연구원 국문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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