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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및 칼럼

[시론] 북한인권법 1년, 우린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가?

<중앙일보 2017년 3월 2일>

2월은 북한 당국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에 대해 세계가 새삼 인식하게 된 한 달이었다. 2월 초에는 북한 청소년들이 소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지속적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린다는 증언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되었다. 북한 출신 두 청소년의 증언에 의하면 국제법상 미성년자 강제노동 금지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소학교 아동들에게 ‘모내기 전투’ 등 각종 명목으로 어른에 맞먹는 노동을 강요하고, 의무교육이 끝나는 16~17세 청소년들은 ‘돌격대’에 배치하여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과 건물 건축 작업에 동원하고 있다.
 
뒤이어 2월 13일에는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백주대낮에 피살되었다. 게다가 김정남 살해에 사용된 독이 사린가스보다 100배 효과를 지닌 VX 독극물이라고 밝혀졌다. 이러한 현지 수사의 진전은 김정남 살해를 북한 당국이 직접 계획, 추진했을 것으로 보았던 많은 전문가의 예측이 사실일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 김정남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처형에 이어 해외로 떠돌던 김정남까지 살해되면서 세계의 언론은 다시금 북한 당국과 김정은의 냉혹한 패륜적 행태에 대해 경악하고 있다. 자신의 친인척까지 잔인하게 숙청하는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가차 없이 유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국제사회가 이런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제반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온 지 10년이 훌쩍 넘는다. 미국은 2004년에 이미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으며, 이 법의 시효 연장을 거쳐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유엔총회는 2005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2016년까지 12년 연속으로 북한 인권 실태를 지적하고 그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오고 있다. 또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4년에 북한 인권 실태 감시와 개선 권고를 위한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설치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제3대 특별보고관으로 아르헨티나의 인권 변호사이며 미얀마 인권보고관으로도 활동했던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를 임명했다.
 
2013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로 북한 인권 실태 조사를 위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도 설치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발걸음에 비해 한참 늦은 지난해 3월, 우리 국회도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국회에 최초로 북한인권법안이 발의된 지 11년 만이었다. 늦게나마 우리가 북한 인권 개선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북한인권법이 지난해 9월 시행된 이후 정부는 법에 따라 북한 인권 개선 정책 추진체계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통일부는 북한인권법 제13조에 의거, 북한 인권 실태와 침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한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립, 출범시켰다. 또 법무부는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3개월마다 이관하는 북한 인권 관련 자료를 보존·관리하기 위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지난해 설립했다. 외교부는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위해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임명했다. 올해 1월에는 법이 시행된 지 4개월여 만에 국회의 자문위원 추천에 따라 북한인권법 제5조에 규정된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도 구성됐다.
 
그러나 북한 인권 증진 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북한인권재단은 아직 출범이 요원해 보인다.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연구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해 정부에 건의하는 게 재단의 목적이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함으로써 북한인권법 이행의 중추적 기능을 맡는 기관인 북한인권재단이 아직 첫발도 떼지 못한 것이다.
 
북한인권법상 재단 이사 12명 중 10명은 국회에서 여야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제1 야당이 이사 추천을 미루고 있어 재단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관련 야당이 오늘날의 혼란한 국내 정국과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정권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계산을 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인권은 절대적 가치이며, 긴 논란 끝에 북한인권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킬 때에도 국회 전체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자유권은 가장 먼저 보호돼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에 합의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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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네바에서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 청소년의 강제노동을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가 이번 이사회의 주요 의제다. 우리 민간단체들도 참석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전 세계가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 김정남 피살 등을 두고 북한의 인권 현실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곤두세운 상황이다. 그런데 법 제정 1년이 되도록 재단 하나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국회가 법률상 규정된 의무를 다해 북한인권재단이 조속히 출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미량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 위원장

[출처: 중앙일보] [시론] 북한인권법 1년, 우린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가?

http://news.joins.com/article/21329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