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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꽃제비에서 100억 CEO로~ 순실 보스의 인생역전 스토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5-03-11
조회수
1157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아나운서 조수빈입니다.
지금도 3만 5천여 탈북민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통일담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분이 아마 얼굴 보면 딱 아실 겁니다.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주인공은?)
(낯익은 얼굴)

탈북하셔서 예능인으로 자리 잡았고 걸 크러시 요리사로 알리고 계신 방송인이자 요식업 CEO 이순실씨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순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007년 탈북/ 연 매출 100억 CEO)

조수빈>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나민희 씨 함께하겠습니다.

나민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탈북민 출신 유튜버)

조수빈>
민희 씨 요리 잘해요?

나민희>
저는 배우기는 했는데 잘은 못합니다.

조수빈>
북한 여자들 잘하나요?

나민희>
아….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요. 저는 요리학교를 나오긴 했어도 소실은 없는 거 같아요

조수빈>
그런가 하면 이분은 정말 황금의 손 다 아시는데 그래도 저희 처음 나오셨으니까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이순실>
저는 2007년 대한민국에 왔고 지금은 비**주식회사 대표 이순실 입니다.

조수빈>
지금 이만갑이란 프로에서 많이 뵙고 부업하시는 거죠?

이순실>
지금 이순실 평양냉면 김치 떡 만두 최근에는 민희 씨와 광고도 찍었지만, 누룽지 콩비지 지금 기획하고 있는 떡볶이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새우장도 합니다.

(통일 담대한 담화)
(한국인 입맛에 맞춘 북한 음식으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사업가 이자)
(화끈한 입담으로 방송가를 휩쓴 걸 크러시 예능인 이순실)
(하지만 아홉 번의 탈북, 어린 딸과 생이별 말 못 할 아픔도 많았는데..)
(북에서 온 그녀 이순실 씨의 남한 정착, 그리고 성공 비결은?)
(통일 담대한 담화)

(Q. 탈북 후 음식 사업을 하기까지?)

조수빈>
원래부터 남한 오시자마자 음식으로 사업 하신 건가요?

이순실>
아니죠. 처음에 일 시작한 게 공사장에서 보도블록 까는 일을 했어요. 삼계탕 가게에서 알바도 하고 그릇도 닦고 정말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해서 건설 현장 식당, 정육점 옆에서 냉면과 만두 이렇게 팔다가 제주도에서 코로나19로 쫄딱 망했어요. 시련이 좀 많았습니다.

조수빈>
좀 자리 잡았다는 게 언제부터세요?

이순실>
자리 잡은 것이 한 7년 전부터죠
내가 다 망해버린 식품들을 다 일깨워서 새워놓고 하나둘씩 정리하면서 맛 개발도 하고 망한 이유를 7년 전에 알았죠
망한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우리 북한의 고집을 안 버린 거죠
평양냉면이면 슴슴한 이 맛을 봐라 이거죠
그런데 이 맛은 한국분들이 관심도 없어요.

조수빈>
물먹는 거 같아서요

이순실>
그렇죠. 그래서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 또 평양 맛도 살아있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을 살려서

조수빈>
중간에서 타협을 어느 정도 하신 거죠

(특유의 사업 마인드로 타협점을 찾은 순실 씨)

이순실>
그렇죠

조수빈>
북한에 있을 때부터 요리하셨어요?

이순실>
아니에요. 요리를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2군단장 요리사를 했어요

조수빈>
엄마가

이순실>
군단장 요리사 엄마는 늘 군 식당에서 요리하시고 사흘 만에 한 번씩 들어오는데 철없는 아버지가 음식이 맛없고 조금 완성품이 틀리다 하면 밥상 뒤집고 어머니를 얼마나 괴롭히는 철딱서니 없는 아버지 때문에 그래서 엄마가 순실아 불을 때라 불 조절부터 밥하는 것까지 다 배우면서

조수빈>
엄마가

이순실>
감자 된장국 만드는 것부터 간 봐주시면서 (음식) 간 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아버지 때문에 그것을 배웠죠. 그리고 군대 생활한 것이 전부예요 요리를 특별히 해 본 적은 없어요. 한국에 와서는 내가 뭐 다르게 할 길이 없으니까

조수빈>
힘들 게 불 때는 것부터 배운 게 도움이 되던가요?

이순실>
그럼요 이 불 조절은 음식의 최고거든요
한국인은 이 나뭇불이 아니고 가스불이더라도 불 조절하면서 음식을 만들잖아요.

조수빈>
요즘은 인덕션을 써서

이순실>
어…. 그런데 모든 음식은 불 조절이 최고거든요

조수빈>
저도 요리학교 다녀보고 음식도 해보았는데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더라고요
되시는 분은 엄마가

이순실>
민희 씨는 요리학교도 나왔다잖아요

(의문의 1패)

이순실>
아나운서님도 다니고 나는 안 배우고 여기 왔습니다.

(위풍당당)

조수빈>
안 배우고

이순실>

조수빈>
남한으로 오니까 처음에 건설 현장 식당도 했다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맛있대요? 다르대요?

이순실>
건설 현장 식당에서도 엄청나게 싸웠죠

조수빈>
왜요?

이순실>
맛이 없으니까
자 그런데 왜 맛이 없는지 시어머니가 알려주시더라고요
내가 계속 고민하면서 시어머니한테
엄마 한국 사람들은 내가 밥을 하면 왜 이리 밥맛이 없다고 막 그럴까?
왜 그런지 가서 한번 보자

조수빈>
북한 음식은 간이 약하죠?

이순실>
간이 약하고 순해요
음식이 한국에 와보니 간은 둘째치고요 미원 다시다를 엄마가 엄청나게 퍼붓는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가 주방 식당에서 일하는 걸 손님들이 밥 타러 왔다가 보고 역시 할머니가 오시니까 이 맛이야 이 맛

조수빈>
그래 이 맛이야 미원의 맛이야
북한 요리하고 한국요리 남한 요리 어떤 것이 제일 달라요?

나민희>
아무래도 한국에는 재료가 너무 좋다 보니까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만들 수 있잖아요
북한의 경우 재료 신선도가 많이 떨어지고 가짓수도 부족하다 보니까 좀 맛이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설탕도 잘 없으니까 좀 짜고

이순실>
북한의 음식이 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냉동 설비가 없다 보니 냉장고가 없다 보니 모든 것을 절여 먹어요

조수빈>
지금도 냉장고가 없어요?

이순실>
그렇죠. 전기가 없으니까, 외국에서 받아오는 냉장고 열면 신발 책 옷 막 들어가 있어요
옷장이나 신발장이나 똑같아요

조수빈>
우리도 어릴 때 젓갈 많이 먹었는데 요즘에는 예전만큼 많이 안 먹는 것 같고 궁금한 것이 아버님께서 밥상을 엎으셨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알기로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안 좋을 텐데 엎을 밥상이 있는지

이순실>
그때만큼은 엎어도 열두 번은 엎어도 되는 살림이었어요

조수빈>
어렸을 때는 풍족했나요?

이순실>
그렇죠
어릴 때는 배급을 꼭꼭 주었고

조수빈>
몇 년도인가요?

이순실>
제가 82년도에 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열여섯 살에 80년대 초반까지는 부러운 게 없었어요

조수빈>
의외네

이순실>
쌀독에 쌀벌레가 생겨서 방 쓸고 나면 바구니가 이만큼 까만 벌레가 기어다녔어요

조수빈>
어느 지역에 사셨어요?

이순실>
저는 평양에서 태어나서 인민학교 4학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시절부터 황해북도 평산에 아버지가 송환되면서 2군단 사령부로 이사 왔죠

조수빈>
군인의 딸

이순실>
그렇죠. 아버지가 군인이니까 아버지가 사령관인 줄 알아요. 집에서도 막 뒤집어 놓고 우리 아버지 철없어요

조수빈>
고난의 행군 전까지는 가능했나 봐요
민희 씨는 세대가 조금 다른데 어땠습니까?

나민희>
저는 저세상은 못 봤고

이순실>
저세상 ㅋㅋ

조수빈>
평양은 괜찮지 않았어요?

나민희>
저는 90년대 이후인데 전설로만 들었던 저의 아버지도 군대 때는 밥반찬을 했는데 맛이 없어서 저의 아버지도 해군에서 군사 복무하셨거든요 바다에 버리고 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수빈>
왜 그래

나민희>
그랬던 시절이 있었데요. 전혀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이순실>
민희야 그때는 개도 흰 밥을 먹었어! 그 정도로
개도 하얀 누룽지

조수빈>
북한도 그런 적이?

이순실>
엄마가 식당에서 누룽지를 겹쳐서 말아서 오거든요 그러면 누룽지 안 먹겠다고 물에 말아서 국을 부어서 개를 먹였어요. 그 정도로 살았다니깐요

조수빈>
어느 순간 북한과 남한이 차이가 크게 났는데 정국 씨가 밥상을 엎는다면 어떻게 해요?

나민희>
내쫓아야죠

이순실>
용서가 안 되지

조수빈>
이순실 씨의 모든 일생을 다 짧은 시간에 얘기하는 건 어렵지만 그 뒤로 상황이 나빠지고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면서 탈북하셨어요
한 번에 탈북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Q.탈북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고?)

이순실>
97년도부터 탈북을 시작해서 2007년도에 성공해서 10년 만에 왔는데 그사이에 8번 북송당하고 9번 만에 성공해서 왔어요

조수빈>
완전 상습범이지 않습니까?

이순실>
그렇죠. 나는 북한에서는 혁명의 배신자

조수빈>
목숨이 날아갈

이순실>
나아갈 위험성이 없었던 것이 거지였으니까

조수빈>
거지?

이순실>
완전히 꽃제비였거든요

조수빈>
아버지도 군대에 계셨고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꽃제비가 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이순실>
그때는 정말 군대에 다녀오니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상태고

조수빈>
몇 살 때인가요?

이순실>
그때가 28, 27살 97년도에 김일성이 죽었고 그때 고난의 행군이라도 선포했지만, 인민군대에서는 1984년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어요

조수빈>
군대가 제일 잘 먹어야

이순실>
아니에요. 군인들도 영양실조로 장난 아니게 정말 많았어요
제가 10년 동안 군에 복무하면서 뭐했냐면 영양실조 환자를 위해서 그들을 먹여서 살려내야지 우리의 임무가 그들을 살려내는 거니까

(착잡한 심정)

이순실>
여군들은 나가서 도둑질 한 거밖에 없어요. 농촌에 가서 무 뽑아 오고 고구마 캐오고 감자 캐오고 몰래몰래 훔쳐다가 군인들 먹여 살리는 게 우리 임무였어요

(아직도 놀라는 중)

나민희>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저의 외할아버지도 평생 외교관으로 일을 하셨는데 고난의 행군 딱 되면서 해주는 공급해 주는 게 없다 보니까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약 한 첩도 제대로 못 쓰고

조수빈>
외교관인데?

나민희>
네 그때는 강냉이 국수도 먹기 어려웠다고

이순실>
강냉이 국수가 뭐야 강냉이 한 알을 보면 그게 금이에요 그 정도로 그렇게 귀했어요

조수빈>
쉽게 이야기해서 도둑질로 연명

이순실>
그렇죠

조수빈>
아홉 번이나 실패했잖아요. 탈북을 그러면 제 생각에는 아무리 꽃제비 생활을 하더라도 이럴 거면 또 나갈 테니까 관리를 할 텐데

(Q.자꾸 탈북을 시도 했던 이유?)

이순실>
아니요

조수빈>
관리할 여력도 없는 거예요?

이순실>
관리란 말은 모르고 그냥 포기를 하지 않은 것이 북한에서 있으면 굶어 죽어요. 중국에 가서 주워 먹기라도 해서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가서 한 끼 주워 먹어도 중국 가서 죽자, 이거예요

조수빈>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어요?

이순실>
수용소에서 쉽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 가다 잡힌 사람들이 아니고 거지로 중국에 가서 주워 먹다가 잡혔기 때문에 6개월이면 나올 수 있었어요. 아프거나 하면 한두 달이면 내보내고

(안타까운)

조수빈>
죽기도 하고

이순실>
내보내면 또 넘어오고 또 넘어오고 중국의 변방부대 부대들이 또 왔니? 이러고 잡혀서 보위부에 가면 지도원들이 나만 보면 또 갔다 왔니? 이게 인사였어요
또 왔니? 여기서도 또 왔니 여기서도 또 왔니

조수빈>
목숨 부지하신 게 신기하네요

(Q.남한으로 탈북한 이유는?)

조수빈>
어떤 계기로 오게 되신 거예요?

이순실>
자꾸 잡히니까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아줌마들이 어린애들과 같이 있는데 언니 언니 9번째 잡혀 오지 말고 중국에 들어가면 깊숙이 들어가면 교회가 있다는 거예요 십자가 거기 들어가서 밥 얻어먹고 옷도 얻어 입고 거기서 잠자리 제공 받고 밥 얻어먹으려고 거기서 살았죠

조수빈>
굉장히 운이 좋으셨던 부분은 요즘 같으면 몰래 드라마도 보고 남한에 대해서 알아 오신 본 처**터 대한민국에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탈북한 분들이 많은데 이순실 씨가 올 때만 해도 그런 목적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이순실>
남한이란 것을 몰랐고 그냥 중국에 가서라도 한 끼라도 주워 먹으려고 쓰레기통을 찾아서 온 거지

조수빈>
연 매출 100억이시거든요 와 부럽습니다

이순실>
이젠 100억 넘어요
넘었어요. 그것이 다 내꺼면 얼마나 좋겠어요

조수빈>
우리 탈북민 CEO의 이야기 다음 주에 이어지겠습니다 통일담담

통일 담대한 담화
PD 심영규 / 작가 김혜련 / 촬영 최준우 이호진 / CG 정은정 / 인턴 양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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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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