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 조수빈입니다.
오늘은 미래 한반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잖아요 유일하게 롤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가 독일인데요. 독일도 통일한 지가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또 대립을 극복하고 있는 독일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연합 뉴스 이광빈 기자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광빈>
네, 안녕하십니까
(이광빈 기자 / 연합뉴스, "힙베를린, 갈등의 역설" 저자)
조수빈>
네 그리고 통일부의 유니콘 기자단 김가은 씨도 함께합니다.
(김가은 / 통일부 유니콘 기자단)
김가은>
안녕하세요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
(소련과 서방연합군의 점령으로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는데)
(1972년 12월 기본 조약 체결로 경제, 과학, 기술, 문화 등 민간 교류의 물꼬 터 /
출처:<통일채널e> 눈물의 궁전 편)
(마침내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 후 1990년 통일을 맞게 된
독일)
(독일 통일 35년 지금의 독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조수빈>
독일통이라고 제가 들었어요. 독일에서 특파원 생활도 오래 하셨고 한독 통일 자문위원이시라고요
이광빈>
예
조수빈>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Q.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광빈>
독일에는 2017년 8월에 특파원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베를린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는데요. 베를린에
가자마자 어 독일 총선이 있었는데요. 독일 총선을 취재하다 보니까 독일은 이제 연립 정부를 보통 구성합니다. 제일 당이 50%
과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정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데 다른 정치 세력 간의 연립 정부 협상이 5~6개월이
걸리는 겁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어 치열한 뭐 대립과 충돌이 벌어지긴 하지만 결국은 그 막 파국으로 갈 거 같은 협상은
결국에는 이루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200페이지 가까운 연정 협약서라는 것을 작성하더라고요 내가 오라 내가 다 가져야 해
이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해 주면서 그래 이거는 너의 정책을 따를게 하면서 타협이 그럼요 2017년에 난민이 한 100만 명이
한꺼번에 들어왔을 때였어요. 뭐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제주도에 예민 난민이 600명 들어왔는데 나라가 막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는데 독일은 그 100만 명이 들어온 그 난민들을 다 수용하고 사회통합을 위해서 굉장히 이렇게 노력한 어 그런 예 그런
것을 보면서 분단기 독일 아 그때부터 생겨나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조수빈>
사실 뭐 독일이 완벽한 나라서라기보다는 그 여러 가지 갈등들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가 여기서 시작이 된 거네요 그 책과 그 활동들이 그죠
이광빈>
예 그렇습니다
조수빈>
유니콘 기자단이 보시게 선배 기자님 굉장히 신뢰감이 가지 않습니까?
김가은>
네
조수빈>
지금 우리나라가 굉장히 갈등이 많잖아요. 좀 답답할 때도 있죠. 젊은 세대로서
김가은>
네 요즘 안 그래도 MZ 세대들은 이런 갈등 상황이 계속되게 된다면 어 굳이 우리가 북한에 관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나 아니면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을 것 같은 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조수빈>
네 이제 하나하나 짚어 볼 텐데요 사실 30년도 더 됐어요. 독일이 통일된 지가 저도 어릴 때
TV에서 독일 그 베를린 장면 무너지는 거 보고 야 우리도 이제 곧 통일되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똑같습니다. 그 당시에
독일에 대한 기대도 많았고 우려도 컸는데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Q. 독일의 현재 모습은?)
이광빈>
좀 혼란스러운 예 단면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거에 비해서 혼란스럽다는
것인데요. 현재 독일 정치를 보면 올해 2월에 총선이 있었고요. 총선을 통해서 어 집권당이 바뀌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독일
총선이 주목을 받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제2당으로 극우 성향의 독일 대안당이 됐기 때문입니다. 독일대안당이 이렇게 급부상할
수 있는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어 일단 아까 말씀드렸던 그 난민 문제 난민이 급속히 많이 들어옴으로써 독일의 노동력
부정 문제 인구 감소 문제를 상당히 해소를 하고 있지만 이에 따라 발생하는 범죄라든가 뭐 사회적 지출 그리고 사회 통합에서
아직 완벽하게 되지 않는 문제점들 어 이런 것들을 갖다가 극우성향 정당이 파고들어서 어 반 난민 정서를 부추기고 옛 동독
지역의 2등 시민 정서, 이런 것들이 독일 통일의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이제 극우성향 정당이 잘 이용해서
제2당으로 부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수빈>
그러니까 사회 갈등이 어떤 뭐 정치권에서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궁금한 게 2등 시민론
아까 말씀하셨는데 네 동, 서독 갈등을 얘기할 때 2등 시민 그 동북 출신들을 가르치는 말인가요?
(Q. 2등 시민론은?)
이광빈>
결국에는 1등 시민은 옛 서독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고 그 옛 동독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우리는 2등
시민이라고 자조 섞인 말하는 것입니다. 독일 통일이 된 지 35년 정도가 됐는데 아직 동서 지역 경제적 격차가 어느 정도
조금은 있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 사회적 권력 그러니까 정치적 권력 부분에서 독일 출신 엘리트들이 어 사회적 권력을 잡은
경우가 적다
조수빈>
30년이면은 거의 한 세대가 다 지나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거의 많이 좁혀졌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남아 있군요.
이광빈>
네 그러니까 이 그 2등 시민이라는 게 아무리 경제적인 문제가 많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통일
과정에서 어 동독의 한 8,000개 정도의 기관에 400만 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통일 독일이 세운 신탁
기구가 이 기관들을 청산하거나 민영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해고가 된 거죠. 그렇겠죠. 예 그러니까 그 일자리를
잃었던 기억들 뭐 대학에서도 교수들이 상당수 일자리를 많이 잃었고 경찰, 군 출신들은 뭐 물론 그리고 일반 기업에서도 이제
그러다 보니까 그 불만들이 이제 내재화됐던 것이 있고요
조수빈>
요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게요 당시 어떤 평화 통일이라기보다는 서독에 의해서 동독이 흡수된
흡수 통일의 형식이지 않습니까
이광빈>
독일 내에서는 아 흡수 통일이라고 얘기는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입장에서 봤을 때는 뭐
경제적 정치적으로 그때 뭐 외교적으로도 그렇고 어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으로 이제 알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사실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동독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아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게 아니라
동독에 있는 주민들이 민주화 혁명을 통해서 일을 계기로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 우리 공동의 기억을
구성하고 동독 지역 주변들도 자긍심을 가져라. 당신들은 2등 시민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하는 독일입니다. 이런 부분을
독일 지성 사회가 현재 독일 정부 과거 독일 정부도 그랬죠. 강조하고 있는 포인트입니다.
조수빈>
우리도 서독이 우월에서 일방적으로 이제 통일을 시켜 버린 게 아니라 동독 안에 어떤 그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통일로 가게 했다. 시각이 달라지네요.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 갈등에 부딪혔었잖아요.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Q. 독일 통일 과정에서의 갈등은?)
이광빈>
서서 갈등 저희 남남갈등처럼 서독 내부에서 발생했던 갈등입니다 빌리브란트 총리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 서독의 수상으로 동방정책을 펼치며 1990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졌고, 유럽
냉전 해제에 공헌한 것으로 평가 받음)
이광빈>
가 직권을 하고 나서 신동방 정책을 추진했는데요 동, 서독 간에 교류 협력을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근데 이에 대해서 야당이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교류와 협력에 관한 기본 주역에 대해서도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재판소의 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빌리브런트의 손을 들어 준 거죠. 기본 조약이 위원이 아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그 야당의
입장도 좀 배려를 했는데요. 서독 정부가 동서독 교류를 할 때 동독의 인권도 신경을 써라 왜냐면은 우리 헌법에는 동독도 우리
영토이며 동독 주민들은 우리 주민이다
조수빈>
우리도 헌법에는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이광빈>
네 헌법 재판서의 판결로 이게 모든 게 뭐 갈등이 해결됐다. 이렇게 보기는 어려운 게 왜냐하면
과정에서 선거가 있었는데 긴장 완화를 통해서 어 평화를 얻고 심리적 안정을 얻고 동독으로 여행도 갈 수 있고 예 브란트의 손을
또 들어줬습니다. 신동방정책 계속 추진하라고 투표로서 의사를 보여 준 것이죠
조수빈>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합의가 부지불식간에 생긴 그런 과정을 거쳐와요
이광빈>
그렇죠. 예 생산적 갈등 능력이 현실 독일에서 난민 문제라든가 나치 지배 부상 문제라든가 그리고
에너지 문제 등의 어떤 경제적 어떤 문제라든가 이런 것들을 어 대응해 가는 또 하나의 중요한 능력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조수빈>
저는 이것도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통일하고 나면은 경제적인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뭐 1등 시민 2등 시민 얘기도 하셨는데 정서적인 격차도 있었을 것 같고 동독의 경제 상황과
서독을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였고 갭을 어떻게 메어 나갔을까요?
(Q.통일 후 정서적, 경제적 격차 해소 과정은?)
이광빈>
분단기 그리고 이제 통일이 이제 이루어질 당시에 1990년 그쯤에 아 동독의 1인당 국민 총생산이
소득에 비해서 한 30% 정도밖에는 안 됐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몇 년간 이렇게 자료를 보면 이제 80%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고요
조수빈>
많이 올라왔네요
이광빈>
올라 예 연봉은 거의 90% 가까이 올라와 있을 겁니다
(구동독지역 연봉 구서독지역의 86% 수준 1인당 GDP 79%)
이광빈>
그만큼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는 굉장히 줄어 있는 상태고 그냥 보통 선진국들 보더라도 지역 간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거 고려하면 동서독의 현재 경제적 격차는 정말 별것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통일의 날에 통일 백서라는 것을 발간합니다.이 통일 백서에는 아까 말씀하셨던 어 그런 경제적 격차에 대해서 이렇게
좀 기술이 돼 있는데요
그러면서 우리는 여전히 과제가 많다. 앞으로 더욱더 동독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언론에도 그런 식의 동조적으로 기사가 나오죠
조수빈>
혹시 서독 지역 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냈다든지 어떤 경제적인 희생을 통해서 이뤄진 성과는 아닌가요?
이광빈>
네 그런 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이 통일이 된 이후에 통일 연대세라는 세금을 거뒀는데요.
여기에 대해선 조세 저항도 물론 있었죠
(통일연대세 / 1991년 구동독지역 재건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특별세)
이광빈>
하지만 어 독일 사회 전체적으로 아 당연히 우리는 한 민족이고 한 국가이고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 우리가 더 지출할 수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이 된 것이었죠
조수빈>
네 듣다 보니까 만약에 우리 대한민국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다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또 차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독일의 통일을 통해서 본 한반도의 미래 이야기 다음 주에
이어지겠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또 만날게요. 통일 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