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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역사부터 통일까지 ㅣ 통일클라스 ep1. 역사학자 심용환 박사 ㅣ ⏰30분 풀버전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01-13
조회수
539

통일 클라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왕선 아래 옛 동네
눈 머무는 곳마다 이야기가 스며있는 서울의 중심, 종로
여기,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5명의 Quester
[김환 Quester]
[김덕진 빅데이터 전문가]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인]
[서동주 변호사]
[알파고 시나씨 기자]

다가올 통일 시대 과연 우리는 통일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또 그리고 통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나눠야 할까요.
7개의 강연으로 여러분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통일클라스, 오늘 그 첫 번째 문을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뭔가 진짜 학창 시절에 이제 반 배정 받고 학기 시작을 알리는뭔가 그런 설렘의 느낌이 사실 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좀 어떠세요?
저는 이제 너무 좋아요.
직접 실시간으로 질문을 물어보고 궁금한 부분을 이렇게 보완을 해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예요.
그렇습니다. 맞아요. 맞아요.
통일에 관련된 얘기를 우리가 나눠야 하고 들어야 하는데 관심 평상시에도 좀 있으셨어요?
관심은 굉장히 많은데 창피하게도 좀 제대로 알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말 우리가 다 같이 학생이 됐잖아요.
열심히 좀 배워보면 좋겠어요.
만학도도 학생이니까
저희가 또 여기에 모여 있는 게 시청자분들을 대신해서 좀 약간 속 시원한 질문을 날카롭게 하는 거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나요?
예, 맞습니다
준비 됐습니까?
열심히 저는 분석하고 준비돼 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하고 강의하는 사람이다 보니까는 보통 이제 이 자리가 아니라 저 자리에 이제 많이 있는데 오랜만에 이 자리에 앉아서 또 학생 느낌을 내면서 하려니까
설레기도 하고 통일에 대해서 제대로 한번 배워봐야겠다
이런 생각 드네요.
좋습니다. 과연 이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우리에게 첫 번째 강연을 가르쳐주실 알려주실 분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나와 주시죠, 반갑습니다.
첫 시작하면 이분이 오셔야죠. 좋습니다.
역사 교육계의 핫피플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시자
역사 연구가이신 심용환 소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뭔가 진짜 연예인을 뵙는 느낌입니다.
역사학계의 유재석 선생님
아, 그렇게 얘기합니까?
아, 그만해~
사실 즐겁게 만났지만 오늘 주제가 또 즐거우면서도 우리가 뚜벅뚜벅 나가야 될 중요한 주제여서요.
무게감을 갖고 참석하고 있고요.
저는 여기서 작년에 한 번 강연을 했던 적이 있어요.
아 그래요?
그래서 지금 오셔서 아시겠지만 뒤에 여기 폭포도 흐르고 굉장히 정취가 좋은 공간이어서
너무 아름다워요.
위치도 좋고 조금 내려가면 윤동주 문학관도 있어서 온 김에 쫙 좀 인왕산의 어떤 기슭의 맛 이런 거 느껴보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통일에 대해 얘기하기에는 이 한옥이
이 장소가 굉장히 최적의 조건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통일을 왜 해야 되냐 이런 얘기 하게 될 적에 사실 어찌 됐건 한민족이잖아요.
이런 같은 공간 이런 곳에서 같은 건축과 공간을 만들고 같이 살았다 라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좀 오늘 이야기랑 이 공간이 좀 어울리지 않을까요?
자, 그러면 과연 심용환 소장님은 어떤 주제로 저희에게
얘기해 주실지 궁금합니다.
화두가
쫙 나오는 겁니까?
짠! 짠!
와~~
어제
자, 통일 클라스 첫 번째로 준비한 강연의 주제는 바로 어제입니다.
통일에 대한 얘기인데 어제라면 과거..
저는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역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데

따져보면 어제의 이야기들이 쌓여서 오늘이 된 거잖아요.
분단 문제 같은 경우는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가 딱 멈춰서 지금까지 계속 오고 있기 때문에 어제의 일을 이제 오늘의 일로 못 만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좀 어제라는 단어로한 번 갖고 왔습니다.
제가 통일 강연하기 전에 꼭 물어보는 게 있거든요.
뭘 것 같으세요?
통일이 일단 되는 게 좋겠냐?
어?
통일을 원하나?
어?
이게 맞아요?
어?
맞습니까?
너무 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 짜지 않았거든요.
오~~맞아요. 사실은 정말 제가 솔직하게 요즘에 강의를 할 때
물어봅니다. 여러분 통일을 원하세요?
그리고 통일을 원하는 사람 손을 들어보기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 어떠세요? 솔직히, 솔직히 교과서에 배우는 정답과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분단된 지 너무 오래됐잖아요. 가본 적도 없고 그래서
솔직히, 솔직히 통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통일 비용이
아 부담감!
적게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저는 역사 토크이니까
북한에 있는 우리 역사랑 관련된 유적지들 가서 저도 탐방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만으로도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는 사실 꼭 해야만 하는가 뭐 그런 생각도 들긴 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왜냐하면 그렇게 어렵고 힘든 과정이 있을 텐데
뭐 돈 문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텐데 굳이
그리고 꼭 통일이 아니더라도 좀 평화롭고 공존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괜찮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있는 거 같아요.
2021년에 실제로 이제 통일의식조사를 했는데 우리에게 정말 ‘통일이 필요하다’ 라고 응답한 비율이 한 몇 퍼센트 정도 될 것 같으세요? 전체적으로 보면
딱 51%?
거의 비슷해요.
어, 진짜?
조금 더 써서 57.7% 네 이게 통일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는데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때가 70.7%였는데 그다음에 이게 계속 지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는 남북 관계의 미래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뭔가 평화를 공존한다. 라고 하는 선호가 56.5% 또 통일 선호가 25.4%
한 번 이번에는 검색어를 통해서 한번 살펴봤어요.
실제로 연령대별로 이 통일에 대해서 검색하는 연령대별 비율을 봤거든요. 놀라운 거는요 남북통일, 통일, 그다음에 분단 모두 10대의 검색량이 제일 많았습니다.
어? 10대 가요?
숙제하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정답입니다.
와!
네 그러니까는 검색을 한다는 건 궁금하니까 찾는 건데
그 궁금증이 과제 때문에
과제 때문에..
저도 사실 공감을 해요. 왜냐하면 저는 이제 강연을 많이 하고 여러 시민들을 만나다 보니까
기성세대들은 반공의식이 높으면서도 통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세요.
적대감이나 두려움이 있지만 통일을 해야 돼라는 믿음이 있다라면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관심이 점점 흐려지고 그리고 그만큼 통일에 대한 관심도 없고 북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정보들 위주로 쌓이다 보니까 많이 달라요. 그래서 지금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진정한 위기죠
왜냐하면 싸워서 사이가 나쁜 것도 위기지만 마음에서 서로가 이제 무관심해질 때가 가장 큰 위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통일 혹은 통일이라는 단어까지 당장 못 가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한 어떤 중요한 새로운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 저희 이 프로그램이 중요한 의미를 취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같이 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오늘 한반도의 통일을 그리기 위한 어제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 될 것 같은데
그럼 지금부터 통일클라스 첫 번째 강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한반도 분단의 어제 통일클라스 그리고 희망
1943년 11월에 카이로 회담이라는 게 열립니다.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과 그리고 이제 그 당시 중국 그 당시 중화민국이라고 그래서 아직은 공산화가 되기 전 단계에 장제스가 이끌던 이제 중화민국이라는 국가가 있었었는데 이 세 나라의 수장들이 모여요
모여서 아시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전쟁이 끝나 가는데 일본이 패망할 거니까 패망한 이후에 동아시아 정책은 어떻게 하지를 의논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이제 이 당시에 1937년 중일전쟁 이후부터 중국과 일본이
계속 전쟁 중이었었고 이 상황 속에서 중국의 지도부도 충칭으로 이전을 했었던 상황이지만 똑같이 우리나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충칭으로 이전을 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이제 쉽게 말하면 첩보를 접한 거죠. 아 지금 누가 봐도 일본이 져가고 있고 전후 질서를 논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카이로 회담이 곧 열린다.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구 그리고 조소앙 김원봉 이런 사람들이 당시 중국의 지배자였었던 장제스 총통한테 면담을
신청했어요. 그래서 카이로회담에 가서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을 좀 얘기해 달라 강력하게 얘기를 해요. 결국은 총통이 그 이야기를 받아들여줘요. 그래서 이제 카이로 회담장에 가죠.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 3명이 만난 상태에서 장제스 총통이 우리 독립 운동가들과 임시정부와 합의했던 내용을 갖고 이제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을 요구를 해요.
원래 우리 임시정부 측에서 요청했었던 건 조선의 즉각적 독립이었었는데 합의를 어떻게 보냐면 조선을, 한반도를 2차 세계대전 끝난 다음에 한반도를 적절한 시기에 독립하겠다. 이렇게 이제
우리도 우리 독립 운동가들도 뭔가를 활동했다.
그것이 바로 회담에 독립이 들어간 거잖아요.
정확하게!
문제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한다는 게 이거 어떻게 가능합니까?
정확한 지적이에요. 근데 이제 다만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어찌됐건 우리 독립 운동가들의 치열한 활동 속에서 태평양 전쟁 이후에 사실은 수많은 식민지들이 있었지만 콕 집어서 한반도에 독립 국가를 세워준다는 보장을 받았다는 건 엄청난 성과예요.
그건 진짜 대단해요.
(끄덕끄덕)
그거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고 그 당시에 우리나라 임시정부 요인들하고 장제스 총통이 대화 나누고 나누던 것도 다 발굴이 됐거든요. 성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 적절함이 언제냐 이걸 두고 사실은 복잡한 셈법이 시작이 되는 거고요. 그런 상황이 되니까 결국은 절반 반쪽짜리 성공밖에 못 거두게 된 거고. 결국은 한반도에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오게 되면서 강대국의 어떤 그런 선택이나 전략으로 뭐가 선택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조절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이제 독일이 분단 됐을 때 프랑스도 들어오고 영국도 들어오고 소련도 들어오고 미국도 들어왔는데 한반도에 왜 오직 미국하고 소련만 들어오고 중국이나 영국까지 왜 안 왔어요?
가장 큰 차이는 태평양 전쟁은 미국과 일본이 했던 전쟁이고 전쟁 막바지에 소련한테 참전을 요청해서 실제로 한 8월 9일 정도에 소련군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이제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 몇 년간 전쟁을 다 했는데 한 일주일밖에 안 들어온 나라가
보상은 똑같이 나눠가지려고 하는 거죠
그런 문제가 되는 거죠. 그리고 사실 그 당시 미국이 제일 걱정했었던 건 이러다가 소련군이 일본까지 들어오면 어떡하나 그래서 이제 미국이 제안합니다. 그냥 38도 위도 38도 선을 기준으로 해서 북쪽 지역과 만주는 소련이 관리하고 남쪽 지역과 일본 섬들을 우리(미국)가 관리하겠다. 이걸 제안을 해요.
그러니까 소련의 남하를 막으려는 전략이었었죠.
반대로 소련도 전쟁 얼마 안했잖아요.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우리가 관리해?’ 나쁘지 않죠.
너무 좋죠.
그렇죠. 그래서 실제로 이 합의가 어떤 국제 조약을 맺어서 혹은 미국과 소련의 대통령들이 맺은 것이 아니라 일반 명령 1호라고 그래서 그냥 양국의 군사지휘관들끼리 한 3~4시간 걸쳐서 합의를 봤었던 내용인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제 38도 선이 딱 분할이 된 거죠.
분할될 때 우리 당사자들 얘기는 안 듣고 자기들끼리 했다는 게 약간 화나네요.
여기까지 좀 들어보면 어떻게 보면 미국하고 소련이 처음에는 같은 편에서 같은 입장에서 얘기를 하고 협의를 하려고 했다면 그 뒤로부터는 이제 대립 상황이 왔잖아요. 중간에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건가요?
태평양 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국제적인 골칫거리는 나치 독일, 파시즘 국가인 이탈리아 그리고 이제 군국주의 국가인 일본 이런 나라들이었단 말이에요.
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를 지향한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향한 소련 같은 나라가 서로 싸울 일이 없죠. 서로 연대를 해서 파시즘 세력을 무너뜨려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들이 다 졌어요. 다 지고 나니까 이제 그들은 이제 패자들이 된 거고 우리끼리 이제 그 연합국 내에서 이제 이해관계의 계산이 이제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거잖아요.
특히 유럽에서 우리가 잘 알지만 동유럽이 공산화가 된다. 라든지 이런 어떤 세력 다툼이 막 시작이 되면서 미국하고 소련이 점점점점 사이가 나빠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진짜로 전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 그 유명한 냉전, 콜드워가 온 거죠.
진짜 때리진 않아 하지만 너 나랑 적이야 이런 상황으로 이제 가게 되는 건데 그 부분에서 이 결정적 사건은 트루먼독트린이라고 해서 그리스와 터키의 공산화 문제를 두고
사이가 확 나빠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식적으로 이제 next 적수는 소련과 공산권이다. 라고 선언하면서 양쪽이 극단적으로 사이가 나빠지게 되니까
원래는 합의적으로 잠깐 그어놨던 선인데 이게 적대적인 선으로 바뀌어 가게 되는 거니까 너무 속상하게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이었는데 해방의 결과가 어떤 제국주의 국가를 밀어냈더니 이번에는 또 이제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어떤 충돌 선에 우리가 그대로 끼어들게 되는 역사의 비극 같은 시간들 되게 속상하죠. 그죠?

한반도 내부적
분단 배경 좌우 이념 갈등
재밌는 퀴즈, 질문 하나 해볼게요.
해방됐을 때 아, 뜨거운 감격은 있지만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공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어떤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조선 왕조 500년이었고 그런 왕조 시대에다가 식민지 시대에서의 어떤 영향도 있었을 텐데 지금 같은 현대사회의 민주주의 시민들처럼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긴 어렵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되게 정확한 지적인데 조선왕조는 유교 국가의 민본주의니까 민주주의가 아니고 일제강점기 때 이제 조선 총독부 시대니까 조선시대보다 더한 시대였기 때문에 해방의 감격은 있지만 사실상 이제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로 간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해방 공간에서 내부적으로는 좌우 갈등이라고 얘기하죠. 그리고 조금 쉽게 표현하면 이념 갈등이 굉장히 좀 심했다. 이렇게 봐도 좀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 사건이 뭐냐면 1945년 12월에 비로소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라는 게 열려요.
세 가지 굉장히 중요한 합의 사항이 나옵니다.
첫 번째가 한반도에 독립국가를 세우자 두 번째 아직은 사이가 나쁜 단계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국과 소련의 합의 하에 세우자 미소 공동위원회를 만들어서 세우자고 한 거였고 세 번째가 문제가 되는데 세 번째가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를 실시하겠다. 라고 하는데 이 세 번째가 굉장히 크게 문제가 됩니다. 5년간의 신탁 통치니까 이건 식민지는 아니거든요. 다만 과도기적으로 아직 좀 이렇게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으니까 좀 이렇게 그냥 한 5년 정도만 슬금슬금 관리하다가 풀어주겠다. 라는 이야기인데 그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우세요?
아니요.
그렇죠. 더군다나 36년을 우리가 이렇게 짓밟혔던 기분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은 이 신탁 통치 이야기를 했었을 때 우익 진영 민족주의 진영에서 굉장히 이제 확 분노를 하면서 반탁 운동으로 이렇게 터지게 되는데 동아일보 오보 사건이라고 이 동아일보에서 보도를 잘못 냈어요.
신탁 통치라는 건 미국의 계산이었어요.
보도는 어떻게 나가냐면 소련이 신탁 통치를 하자고 그랬고 미국이 신탁 통치를 반대한다. 라고 보도가 나가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이제 오해를 하는 거죠. 소련이 지금 신탁을 원하고 우리를 식민화시키려고 하는 거고 미국은 아니네? 이렇게 되면서 그럼 이 공산주의자들 믿을 수 없는데? 이런 식으로 이제 싸움이 굉장히 심해지는 촉매제가 됩니다.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또 일어나요.
좌익이 맨 처음에는 같이 반탁 운동을 하려고 나오다가 왜인지 모르겠어요. 이건 현재까지도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좌익 그러니까 사회주의 진영에서 아니 우리는 찬탁한다 우리는 신탁 통치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 입장을 확 바꾸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우익 입장에서는 이거 진짜 완전히 배신 때리네.
오보인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그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 공산주의자들이 믿을게 못 된다.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려고 한다 하면서 상호 오해가 증폭이 되는 과정으로 막 불타오르게 되는 거죠.
너무 안타깝다 어떻게 이렇게 꼬이고 꼬여요?
독일처럼 이렇게 외부 세력에 의해서 분단 아니고 딱 보니까
내부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다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분단된 것 같은데요?
다툼이 있는 거죠. 다툼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제 사실 이걸 또 극복하려는 흐름도 있었어요.
소위 말하는 중간파라 불렀는데 중간파 지도자들이 이렇게 싸우면 결론은 전쟁이다. 싸움은 분단밖에 없다. 근데 이건 분단은
그 당시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주제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가 분단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발해 신라 그러니까 한민족 역사에 분단이라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해방이 됐었을 때 서로 막 정말 이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도 분단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거예요. 근데 갈등이 너무 심해지니까 1940년대 중반이 되면
서로 간에 합작을 하고 소통을 해야 된다 하면서 좌우합작위원회 활동 같은 것도 했는데 뜻대로 안 되는 거죠.
안타깝다
그러면 이 분단을 막기 위한 내부의 노력은 또 없었을까 싶거든요.
노력이 있죠.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끊임없는 노력들이 있게 되고요
그때 이제 분연히 일어난 두 분이 계신 거죠.
김구라는 존재와 김규식이라는 존재 이 두 분을 우리가 좀 주목해서 볼 수 있습니다.
김규식과 김구가 약간 차이는 있는데 김규식 선생 같은 경우는 확실한 민족주의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합의점을 구해야 된다. 라는 것을 평생 김규식이 노력했다고 볼 수 있겠고요.
김구 같은 경우는 좀 다른 게 김구는 임시정부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갖기도 했었고 이념적으로 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근데 중요한 게 뭐냐면 잘 아시죠? 김구가 했던 말
여러 가지가 있어서 어떤 걸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내게 물으신다면 첫째도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독립이요
이 얘기 꼭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분단이 현실화가 됐었을 때 수많은 과거 독립 운동가들은 그냥 이걸 인정하고 각자 이제 정치적 성공을 거두려고 이렇게 다
선택을 하던 과정이었는데 김구가 이제 그렇게 안 하는 거죠.
내가 비록 원래는 민족주의 진영의 지도지만 그렇게 해서 반쪽짜리 정부가 세워지는 게 이게 맞냐 내 나라 내 겨레가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본인의 어떤 기존에 갖고 있었던 모든 정치적 유산을 포기해요. 포기하고 이제 북행을 결정하는 거죠. 그때 이제 유명한 연설이 있잖아요.
결국 이제 북한으로 가서 협상을 시도했지만 북한에 가보니까
북한은 이미 더 먼저 공산정권이 수립이 되어 있었던 상황이니까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고 결국은 48년 이 8월에 남쪽에는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사실 먼저 정부 수립을 준비했던 건 북한인데 남쪽에서 정부가 수립되는 걸 보고 이제 북한에서 다시 또 정부를 수립을 하게 되면서 김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단이 확정이 됐었던 그러니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1945년 8월 15일이라면 가장 슬펐던 순간이 1948년 8월 15일 그리고 9월 9일 두 정부가 수립된 날인 거죠.
너무 속상하죠?
이렇게 허탈할까요. 그렇죠?
그렇죠.
허탈하기 짝이 없고 또 한편으로는 진짜 어처구니없는 과정들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드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분단된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통일을 위한 움직임들이 계속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이제 희망적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희망 분단의 역사에서 통일의 역사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갖고 좀 달려봐야 되는데 당장 진행되지는 않았고요 시기가 이제 1970년대로 쭉 넘어와요. 왜냐하면 1950년 한국전쟁하고 바로 무슨 뭘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서로 간에 굉장히 또 사이가 나빴고 그 이후에 베트남 전쟁까지 터지게 되면서 상호 간에 언제 서로를 공격할지 모르는 이런 두려움이 굉장히 컸었습니다. 60년대 후반까지는 사실상 통일 논의 자체가 거의 못 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러다가 이걸 기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드디어 1969년에 닉슨독트린을 발표해요.
그 닉슨 독트린의 핵심이 뭐냐면
데탕트! 맞죠?
오, 얘기해 주세요.
데탕트 이제 서로 너무 세게 가지 말자 왜냐하면 소련이라는 거 있는데 중국으로 옆으로 끌어당기자 그 다음은 이제 뒷받침해 주세요.
정확한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데당트 내지는 좀 완화 시키자. 라는 정책인 건데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아시아 문제를 좀 조정하고 싶었던 상황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해서 1972년 7월 4일 날 그 유명한 7∙4 남북공동성명이 이제 발표가 되게 되는 거죠.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아주 극비리에 다섯 차례에 걸쳐서 북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지배자였던 김일성과 합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걸 발표하게 되는데 아주 중요한 3가지 3원칙이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우리가 서로 간의 대화로 문제를 풀고 평화라는 기회를 통해서 민족이 하나가 되자 아주 중요한 3원칙이 한국전쟁 끝나고 20여 년 지난 다음에 세팅이 된 거죠.
#노태우 북방정책 추가 이때 이 합의안을 바탕으로 해서 그 이후에 1980년대 90년대 때
#김대중 햇볕정책 추가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든지 노태우 대통령 때 북방정책을 펼친다라
든지 김대중 대통령 때 햇볕정책을 펼칠 때 다 7∙4 남북공동성명의 세 가지 합의안을 기초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왜냐하면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가 합의를 봤던 사안이니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던 거죠. 말로만 약속하는 거 의미가 없잖아요.
이제 오늘부터 나랑 사귈래. 뭔 의미가 있겠어요? 그죠?
가서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하고 해야 되는데 구체적인 어떤 교류 같은 거에 대해서 아시는 거 있으신가요?
역시 떠오르는 거는 이산가족 상봉 아닐까 싶은데요.
1983년 이산가족 상봉 남한 내에서 벌어졌었던
기억나죠.
맞아요.
그때 그 KBS 방송국 앞에 정말 많은 분들이 현수막 같은 거를 대자보를 적어 갖고 뭐 몇 살 누구를 찾습니다. 이렇게 해서 막 목에도 거시고 옷에도 붙이시고 이랬던.
맞아요. 1983년에 남북이 아니라 우리나라 내부에서 한번 이산가족 100만 명이 넘는데 한번 찾아보자 했는데 그때 정말 원래 4시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가
맞아요.
완전 세계 기록을 세웠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근데 나중에 만나보니까 세상에 옆 동네에 내 동생이 살고 있고
맞아요. 맞아
이런 만남들이 이루어지면서 드디어 이제 남북관계 문제를 얘기하자 이산가족 문제부터 인도적 차원에서부터라도 처리하자 이런 이야기가 시작이 됐고
그러고 나서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큰 수해를 입어요.
수해를 입으니까 북한 측에서 웬일인지 모르겠는데 니네 어렵구나 하면서 구호물자를 이렇게 보내준다. 라는 연락을 한 거예요.
보통 우리가 안 받았었거든요. 근데 그때 또 우리도 한번 보내봐
하면서 진짜로 물자를 받으면서 희한한 순풍이 불게 된 거예요.
너무 좋다.
그래서 남한 측이 자신감을 많이 갖게 됐고 그래서 남한이 더 적극적으로 남북 대화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된 거예요.
그럼 선생님 90년대에 와서 이러한 교류가 어느 정도 이제 생기니까 어떤 식으로 진전이 됐어요? 남북한 관계가
이런 과정 속에서 이제 이산가족 상봉도 어느 정도 시도가 되고 성과들도 일부 있었고 또 이제 스포츠계 쪽에서 교류가 많았잖아요.
많았죠.
그 여파 속에서 1989년에 비로소 냉전이 무너져요.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게 되니까 사실 그때 우리가 노태우 정권 당시에 적극적으로 북방외교라는 걸 펼친 거죠.
이념의 틀을 넘어서서 함께 소통하고 호흡하자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자 라고 하면서 이제 1991년에 그 유명한
남북한 UN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남한과 북한의 장관, 차관, 장성들이 계속 회의를 하면서 두툼한 책을 낸 거예요. 남한과 북한의 어떤 상호 협력과 교류 협력에 대한 다양한 모델과 플랜을 이때 딱
짜게 됐다는 것들 굉장히 큰 의미를 갖게 되죠.
남북 교류에 대한 것들이 굉장히 큰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구나. 라는 걸 느낄 수가 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도 굉장히 이 발걸음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이제 2000년 딱 들어서기 직전에 1998년에 김대중 정권 초입 때죠. 이때 홀연히 소를 끌고 나타나신 분이 계십니다. 기억나시죠? 그렇죠?
아~
기억나시죠? 정주영 회장.
북한에 방문하면서 드디어 이제 경색된 국면을 기업인이 해소를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본인이 이제 금강산 밑에 통천분이세요.
아산에서 성공하셔서 이제 올라가시면서 문을 열게 됐고 그걸 받아서 이제 김대중 정권에서 햇볕정책을 외치게 되면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비행기를 타십니다.
그때도 믿겨지지 않았었죠.
맞아요.
가더니 1시간 딱 비행을 하더니
평양에 내려서 딱 열리니까 이제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내려올 때 베일에 싸였던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렇게 맞이하면서 둘이서 악수하면서 소통을 하고 그래서 이제 맺어지게 된 게 그 유명한 6∙15 남북공동선언이죠.
#김대중 김정일 악수 사진
중요한 원칙들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고 개성공단이라든지 경의선 철도 연결이라든지 실질적인 경제적 조치를 통해서 남북한이 친해지고 친해지는 바탕 위에서 경제적으로 함께 좀 서로 교류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평화 번영의 길을 만들자.
#2007년 노무현김정일 그 기초에 의해서 이제 2007년에 제2차 남북협상
육로로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로 건너가요.
#2018 3차 협상
2018년에 제3차 남북협상으로 이어져 오면서 우리가 사실은 모든 걸 다 잃었던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 그래도 지금 만들어오고 있는 과정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아가니까 국제사회에서도 관심을 보이게 되고 또 국제사회에서도 이거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지원도 해 주고 하는 그런 과정 속에 있다고 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역사를 보게 되면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약간 흑과 백 180도 약간 이런 느낌이 되게 강해요. 그래서 한편에서는 가장 최악의 모습들도 보였지만 또 그것을 극복하고자 정말 치열한 노력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되게 가슴 아팠던 부분에 대해선 반성하면서 반면교사로 삼고 우리가 이뤄냈던 성과들은 객관적으로 잘 따져보면서 그 기초 위에서 어떤 걸 더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성과를 또 계속 하나하나 더해가는 과정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끝으로 제 얘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심용환 소장님이 생각하는 우리는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될지?
가장 큰 문제는, 아까 되게 중요한 말씀 해 주셨는데 과제를 위해서만 통일에 관심을 갖는다 혹은 최근에 와서 통일대박론이라고 해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돈을 많이 번다, 이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냉정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경제적 이득 때문에 사람들의 관계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의 큰 변화는 그런 계산으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사례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분열이 하나가 되고 상처가 치유가 되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과정들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국가적 차원에서는 계속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어야 되는 노력들을 해야 되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계산적인 생각들을 벗어나서 우리가 한민족 한 역사를 갖고 있었던 공동체라는 생각 속에서 다시 한번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꺼리들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역사적 관심들을 가져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첫 번째 통일클라스를 정말 알차게 준비해주신 심용환 소장님께 다시 한번 박수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일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으로 통일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알아보는 시간 통일클라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더 새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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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의 분단의 역사부터 통일까지 ㅣ 통일클라스 ep1. 역사학자 심용환 박사 ㅣ ⏰30분 풀버전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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