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통일부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메뉴시작
주메뉴 닫기
검색하기
통합검색
주메뉴 버튼

통일부소식

통일부 영상

본문영역

통일영상

[통일담담] 탈북화가 오성철 두 번째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3-12-19
조회수
340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조수빈 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예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예술과 자유를 위해 탈북한 오성철 화가]
오성철화가님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옆에 두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토일담대한 담화
탈북화가 오성철, 두 번째 이야기

조수빈: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는 ‘흙수저 중의 흙수저’였는데 어느 정도 먹고 살기 괜찮은 정도까지는 가신 것 같아요
오성철: 네
조수빈: 그럼에도 탈북하게 된 계기는?
오성철: 어릴 때부터 (품었던 생각이) 북한만 아니면 된다
조수빈: 진짜요? 똑같네
(인정)
오성철: 이 놈의 북한만 아니면
조수빈: 그 정도에요?
오성철: 논리가 안 맞아요 하나도 안 맞아요 말과 현실의 행위가 전혀 안 맞아요
거기에다가 계속 힘들잖아요 무엇보다도 계속 힘들고
[생활은 어느 정도 편해졌지만 여전히 심적으로는 힘든 세월]
조수빈: 그걸 꾹꾹 참으시면서 그림만 그린 거죠
오성철: 어쩔 수 없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어떤 일이든 수동적으로 강제로 해야했기 때문에 그런 (불만스런) 생각들이 계속 있었어요 어느 순간 기회가 와서
조수빈: 어떻게요?
오성철: 대학을 다니면서 수업료와 생활비가 필요했던 상황
조수빈: 북한은 무상교육 아니에요?
‘무상 정책’을 홍보해 가장 성공한 정권 ‘북한’
오성철: 왜냐하면 땅 없던 사람들한테 ‘남의 땅을 빼앗아라 그러면 공짜로 줄 것이다’라고 부추겨서
조수빈: 여기 빼앗겼잖아요
오성철: 정권이 세워졌기 때문에 대학생임에도 수업 후엔 다양한 행사에 동원되어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운 북한 행사 뿐 아니라 다른 현장 일에 동원되어야 하고, 거기다가 계속 돈을 내야 해요 대대, 중대, 소대별로 나눠서...
조수빈: 그런 불만이 빵 터지셨군요?
오성철: 그래서 저도 먹고 살아야 하고 돈도 내고 해야 해서 학교를 학교를 다니면서 장사를 했어요
[대단하다]
오성철: 장사하던 과정 속에서 생긴 인맥이 보위부 쪽이라
[보위부와의 인맥을 통해 외화벌이에 나서게 된 오성철 화가]
조수빈: 네
결국 중국으로 오면서 탈출의 실마리 마련
결정적으로 탈북을 결심한 계기?
중국에 오자마자 바로 탈북을 결심
조수빈: 바로요?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오성철: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국 영사관에 갔는데 처음 알았어요 철조망이 네겹이에요
예상보다 훨씬 삼엄한 영사관의 경비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걱정이 태산
오성철: 그래서 영사관 앞에서 전화를 했죠
공안들이 왔다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 속 전화를 건 영사관, 그리고...
오성철: 어떻게 들어가야 하냐고 물으니까
그냥 들어오라는 거예요
너무나 태연한 영사관 직원 말에 당황한 오성철 화가
오성철: 정보가 전혀 없이 (탈북한 거죠)
조수빈: 그래서 그냥 들어가신 거예요?
오성철: (그래도 불안하니까) 영사관 주위를 돌았어요 갖고 온 짐도 공안들이 서있는 곳에 벗어놓고
[흥미진진]
오성철: 한참 돌다보니까 여권 발행하는 곳으로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게 보여요 (그곳으로) 날쌔게 들어갔어요 어느 순간에
조수빈: (영사관 앞에서도) 체포될 수 있나요?
오성철: 그럼요
와~~~
점심시간이라 사람도 없었던 영사관에 들어간 오성철 화가
헐~
긴장된 마음으로 영사관에 들어갔지만
오성철: 거기가 영사관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여권 사무 보는 곳인 줄만 알고 (그런데 중국 사람이) 자꾸 따라 오길래
[완전몰입]
오성철: ‘야, 너 따라오지마, 왜 따라와’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코믹했던 당시 상황
오성철: 그러다가 데스크로 가서
조수빈: (탈북했다고) 얘기를 하셨군요
탈북한 사람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성철: (일단 나부터) 영사관에 들여보내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여기가 영사관이래요
오성철: 좀 기다리라고 (말해줬어요)
OMG
이럴수가
조수빈: 원래 질문은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였는데
[ㅋㅋㅋㅋㅋㅋ]
조수빈: 너무 허무하게 (성공하셨네요)
오성철: 정말 위험했던 순간이 그 순간이에요
아하~~
하늘이 도와줬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운 좋게 탈북에 성공했다고 생각
조수빈: 이 분은 진짜 럭키가이네요 그 때 대운이 터지셨네요
오성철: 제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입구를 그렇게 쉽게 들어왔는데 반면에 다른 분들은 너무 힘들게 탈출하셨잖아요
목숨을 걸고 다양한 방법으로 달북을 시도해 자유의 땅으로 오는 탈북민들
심지어는 해외로 먼 길을 이동하거나 공안에게 잡혀 북송되는 경우도 다반사
조수빈: (심지어는) 북한으로 잡혀갔다가 다시 나오고 그러거든요
오성철: 그런 정보들을 (전혀 몰랐고) 다 영사관 들어가서 알았어요
모르니까 용감하셨던 거예요
오성철: 모르면 뭐든 용감해지죠 (쑥스...)
조수빈: 희진씨도 해외에 나갔다가 탈북을 했잖아요? 궁금한 게 중국에서 오시는 경우는 많이 들었거든요 북한에서 탈북 하는 것과 해외에서 탈북 하는 것 중에 해외에서 탈북 하는 것이 좀 더 쉽나요?
북한 내 탈북보다 해외에서 남한으로의 탈출이 더 용이
남한에 와서야 탈북민이 많다는 걸 알게 된 희진씨
저는 저만 (유일하게) 탈북한 줄 알았거든요
류희진: ‘나 혼자 조국을 배신했구나’ 이러면서 탈북을 했는데 이미 탈북자가 3만명이 넘는다는 걸 알고 (놀랐어요)
희진씨의 탈북 스토리 독일을 경유해 남한으로 탈출
독일까지 보위부들이 절 쫒아왔어요!
보위부가 추적하게 만든 결정적인 실수는? 핸드폰!
(아니...;;;;;)
긴박한 탈출 과정에도 SNS를 하면서 탈출의 낭만을(?) 즐겼던 희진씨
아니 그건
심지어 친구들과 SNS를 통해 탈출 과정과 지점까지 공유
에미나이가 미쳤네요!
ㅋㅋㅋㅋㅋ
정신이 나갔었죠
류희진: 그러다보니 (보위부에) 추적이 돼서 (그런데 저는) 전혀 모르고 여행하듯이 독일까지 간 거죠. 즐기면서...
집중분석! 보위부는 류희진을 일부러 체포 안했다?!
류희진: 잡힐 뻔 했는데 저도 그때 독일 한국 (대사관으로 피신했죠)
(이 분들 정말..)
이 두 분 다 참 철이 없으셨네요
생각보다 유쾌했던(?) 북한 탈출기;;;;
조수빈: 그렇게 오셔서 (남한에) 여러 가지 직업이 있지 않습니까? 그 직업들 중에서 화가가 되셨어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소년 성철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도 메꿀 수 없었던 창작열
북한의 예술가, 미술가 이런 거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북한의 미술은 기능을 가진 사람이 작업한 공예에 불과
오성철: 그림을 그려도 저 개인의 그림은 그릴 수 없고 그랬죠
탈출은 쉬웠으나 정작 남한에 오기까지 수 년 간 영사관 지하에서 버텨야 했던 은둔 생활
조수빈: 지하실 벽에 그림 그리고 그러신 거 아니에요?
네. 계속 거기서 그림만 그렸죠
[정말 대단]
오성철: 그래서 (영사관에 머물면서) 그림을 시작해서 (지하에서) 계속 그리면서 어느 순간에 딱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면 시간과 장소를 잊고 몰입
오성철: 그림 하나를 그리면 며칠이 지나가는지...
조수빈: 북한에서는 그렇게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으셨을 것 같아요
없죠
류희진: 하라는 것만 해야 하고....
북한의 예술가들끼리의 깊은 공감
어려운 시기를 버티게 해줬던 ‘그림에 목숨을 빚진’ 탈북자 오성철
조수빈: (그래서) 남한에 가면 그림을 그려야겠다...
오성철: 네... 물론 돈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것도 좋고, 명예를 얻어 직위가 높아지는 것도 좋지만 그냥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탈북자 오성철은 화가 오성철로 다시 태어났다
오성철: ‘그냥 그림그리다 죽겠다’ 이런 생각으로 남한에 왔습니다
일순간 숙연해진 스튜디오
조수빈: 그림을 저희가 보고 있는데 항상 ‘수저’를 소재로 삼고 계세요
작품 소재로 ‘수저’를 선택한 이유는?
오성철: 제가 너무 어렵게 남한에 왔잖아요
조수빈: 그렇죠
오성철: 모든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진짜 예술을 하고 싶어서 생각을 하다가 욕망이 생각났어요
단순한 식기가 아닌 인간의 욕망을 해소하고 삶을 이어주는 ‘수저’
화가의 관념을 표현하는 오브제로서의 ‘수저’를 의미
남북 분단 마저도 인간의 욕망으로 일어난 ‘비극’의 하나
우리의 생각이나 이성은 욕망을 숨기고 미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
결국 수저는 대중에 아첨하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 소재이자 ‘화가 오성철’의 분신
오성철: 그렇게 밥 먹는 숟가락, 생존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퍼담는 도구를 주제로 하자 해서
조수빈: 그래서 수저를 (선택하셨군요)
오성철: 그렇게 수저를 선택하게 됐어요
조수빈: 그림이라는 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전까지는 돈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다른 일도 하시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오성철: 택배 상하차 일도 해봤고요. (다양하게 했어요)
미대 입학 후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노동
조수빈: 미대가 학비도 비싸잖아요?
학비 뿐 아니라 만만찮은 부담을 주는 재료비
고민 끝에 몸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
조수빈: 그런 생활을 하시면 후회되지 않으세요? ‘남한에 이렇게 고생을 하려고 왔나’ 같은...
절레 절레
오성철: 남한에 온 것에 후회는 없어요 북한에서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것을 했잖아요?
북한과 달리 고생마저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남한의 삶이 더 행복
조수빈: 일하면 일한 만큼의 댓가도 받고?
오성철: 일하면 댓가가 있고, 그 돈으로 ‘내가 추구하는 예술을 할 수 있다’ 그런 삶이기에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너무 좋은 거예요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게 된 남한의 삶
작품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때?
오성철: 우리나라에 와서 그림을 보는데 듣는 이야기부터 달라요 미술가, 화가 그 개념부터 다른 남북한 모두 같은 단어인데 뜻은 전혀 달라요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격한 공감
오성철: 그림을 그리고, 자기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고
세상의 단 하나인 ‘나’를 드러내는 예술을 할 수 있다!
오성철: 그런 게 너무 놀랍죠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조수빈: 결혼도 하셨고, 아이도 낳으셨잖아요?
앞으로의 작품에 변화가 올까?
오성철: 예술을 할 때 화가들이 (제가 다니는) 대학에 와서 하는 말이
“사회의 문화정신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화가”
오성철: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살다보면 돈 있는 사람들의 취향도 맞춰야 하고 거기다 인맥도 신경써야 하고 그런 곳에 자꾸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가의 ‘적응’은 대중의 입맛에 충실한 작품을 생산하는 것
사람은 익숙한 걸 좋아하잖아요?
결국 대중에 익숙한 것만 만들면서 화가의 세계는 축소
따라서 화가가 ‘사회적 적응’에 순응하면 선도자가 아닌 추종자가 된다!
오성철: (그러다) 방명록에 어린이가 쓴 글을 봤는데
“숟가락에 색칠만 하면 예술작품이 되는 군요”
오성철: 이런 글을 딱 쓴 걸 보고 당황했어요
예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고, 그 안목을 제시하는 것이 화가!
오성철: 어쨌거나 그 글을 보고 ‘내가 참 잘하고 있구나’ 사람들의 관념을 바꿔줄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수빈: 오늘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류희진: 많이 반성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일상의 매너리즘을 일깨웠던 오성철 화가의 열정과 예술혼
그의 작품과 생각이 일상의 소중함과 작은 기쁨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일하면서 정말 즐겁게 일하고 계시고 일해서 얻은 돈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고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반성했습니다.
탈북화가 오성철과의 소중했던 만남
예술가로서의 꽃길이 펼쳐지길 기원합니다!
통일담담 오늘은 북한에서 온 탈북화가 예술 혼을 불태우고 있는 오성철 화가님과 함께했습니다.
통일담담
피디:심영규 작가:오유경 촬영:최준우 이호진 CG:정은정

첨부파일

저작권표시

공공누리의 제 4유형 안내
통일부의 [통일담담] 탈북화가 오성철 두 번째 이야기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 관리부서 :
    홍보담당관 홍보담당관
  • 전화번호 :
    (02)2100-5765
  • 콘텐츠 최종 수정일 :
    2023-11-2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