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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필통 43회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 12년 1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박승현
작성일
2019-12-20
조회수
12173

친절한 김 교수와
친근한 김 팀장이 함께하는
통일토크 광화문 필통

반갑습니다.
개성 만월대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만월대 강의하다가
가끔 오늘 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해주는 노래가 하나 있어요.

한번 한 곡조.

황성옛터라고.
“황성옛터에 달이 뜨니 월색만 고요해”
아 이거 잘 안되네요. 아침...
이게 황성옛터, 옛날에 개성에 정궁 터였죠.
그렇게 알고 있어요.

남북은 2007년부터 개성 만월대를
같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사업을 해왔는데요.
이 사업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해주실 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김경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부장님 인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김경순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아까 노래도 참 어색하게 하긴 했는데
이 황궁 터가 익숙하진 않잖아요.
일제 강점기 때 아까 그 노래도 작곡가가 만월 달이 뜬 걸 보고
옛 고려 시절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불렀다는데
고려하면 뭐 조선하면 뭐 이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궁과 관련해서는 조선하면 경복궁 딱 떠오르는데
고려하면 그 경복궁에 대치될만한
그런 이미지를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기왕 이렇게 오셨으니까 첫 말씀으로
만월대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곳인가 소개 좀 해주세요.

조선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이런 식으로
궁궐의 이름이 있는데 고려는 이름이 문헌기록상에 남아있지 않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추정하기로는
이름이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조금 하고요.
그래서 실제로 만월대라는 이름은
‘만월대’ ‘망월대’라고도 불렸었는데.

망월대

네 그러니까 전부다 달과 관련된 이름이고
이게 조선시대에 문헌기록에 나오는 이름들이에요.
그래서 지금 올해가 이제 만월대가 만들어진지
1100년 되는 해였는데요.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그 다음해에 개성으로 천도를 하면서
궁궐을 짓기 시작을 하는데 그곳이 만월대에요.

그럼 그 정식 명칭이 아니라는 거.
옛날 노래 황성옛터도
옛날 고려시대 때 황성옛터다 해서 불렀던 거구나.
 
남북이 함께 공동발굴조사를 한다는 것도 되게 의미가 큰데
어떻게 남북이 함께하게 되었는지
그 경과 같은 것도 이야기를 해 주세요.

북한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고구려 고분을 등재를 하고
2004년에 등재가 되어서 이제 기념해서 행사도 많이 하고 했는데요.
그런데 개성 역사지구를 등재를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래서 그 문화재청하고 같이해서
개성역사지구 등재 지원을 위한 학술회의 및 공동답사.
해가지고서는 2005년에 이제 학술회의를
남북 학자들이 같이 모여서 하게 되었어요.
아 이걸 길게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라는 공감대가 생겼고
그 다음에 2005년에 장관급회담 12월에 제주도에서 하면서
장관급회담이 세계유산등재 개성과 관련해서
지원한다는 문항이 아예 들어갔어요.
개성역사지구니까 이게 만월대만 있는 건 아니고요.
공민왕릉도 있고 왕건왕릉도 있고 성균관도 있고 많거든요.
이중에 어느 사업을 할 것인가 라는 것도 되게 논쟁이 있었고
남북 간의 또 어떤 게 있었냐면
첫 사업이고 이렇게 장기간으로 갈 수 있는 사업에서는
뭔가 당장에 성과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이걸 이어갈 수 있다는.
남측에서는 당장 파서 성과가 나올 것 같은
“작은 무덤을 파자” 이렇게 했었고
북쪽에서는 “만월대가 성과 나온다.”
그런데 여기는 완전히 나대지처럼 되어있어서
밭으로 일부 쓰고 이렇게 쭉 다 비어있는 땅이었거든요.
그래서 보통 남측에서 생각할 때
그런 땅에는 뭐가 남아있지 않는 거죠.
그래서 “안 된다” “안 된다” 하다가 논쟁을 하는 중에
북쪽에서 “확실히 나온다.” 확실히 나온다 그래가지고서.
그러면 일단 시작해보자.
그런데 이게 워낙 범위가 커서 지금 저희가 합의한 구역만도
3만 3천 평방미터인데 그 이거를 다 발굴을 하려 해도
그때 생각으로도 10~20년이 걸리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게 만월대 전체로 봐도 3분의 1이 안 돼요.

고려사 지난 역사를 어찌 보면 고증하고 복원하고
또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작업인 거잖아요.
그리고 이 만월대 발굴에 직접 나섰던 분들은
어떻게 구성을 하게 되고 그분들이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6.15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해서
준비위원회로 4년 정도를 활동을 하면서
남북공동 학술회의를 계속해서 진행을 했었고요. 주제별로.
그리고서는 2004년 2월에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남측위원회와 북측위원회가 있는 공동 조직으로 해서
북측과 합의를 했어요.
그래서 2004년에 발족이 되게 되었고
그 발굴조사는 사실은 고고학 영역이기 때문에
역사학자 조직에서 하는 사업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역할은 사실상 협의와 현장지원,
그다음에 출토된 유물이나 이런 출토성과에 대해서
발굴성과에 대해서 역사적인 검토를 같이 하는 거고요.
기본적으로 현장에 들어가는 발굴단은
고고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고고연구실을 중심으로 해서
고고학자들이 발굴은 들어가고
역사학자협의회에서 지원을 하는 형식으로.
 
보통 한차례 지금 한 8번 정도 발굴이 이뤄졌다고 들었는데
한차례 들어가면 얼마나 오랫동안 발굴을 하고 어떻게 지내요?
 
짧게는 26일 들어가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짧은 게 26일?
 
네 이때는 이제 그 원래 발굴을 그 해에 못할 상황이었는데
남북관계상 비가 엄청 오면서 2010년에
홍수 피해가 여러 군데서 보도가 되고
그래서 만월대 같은 경우도
석축이나 이런 게 위태로운 게 있었어요.
저희가 특히나 발굴하면서 이렇게 파헤치기 때문에
이게 유적의 입장에서는 발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파괴의 성격이 같이 가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가서 조치를 해야겠다.
북측하고 같이 이런 진단도 하고 조치도 해야겠다.
해가지고 급하게 들어가서 그때는
26일 만에 끝났고 제일 길게 있을 때는 6개월 진행했습니다.

다들 정말 입이 떡 벌어졌었어요.
아무래도 저쪽 땅이 좋은 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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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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