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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담] 탈북민에겐 너무 어려운 정착, 국민들의 관심과 배려를...

작성자
관리자
작성자
장수민
작성일
2024-09-03
조회수
162

조수빈: 안녕하세요 통일담담의 아나운더 조수빈 입니다 지난시간에 이어 자유북한방송 김성민대표님과 함께 탈북민의 정착과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활동했던 이야기들, 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탈북 이야기까지 듣고 있습니다
통일부 유니콘 기자도 함께 나오셨습니다.

김성민
자유북한 방송 대표

윤수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조수빈: 어서오십시오

북한을 향해 자유를 외치는 김성민 대표, 두 번째 이야기
조수빈: 두만강 건널때까지 거기서 끝났어요 제가 조사를 해 왔는데, 그게 96년입니다.
북한을 떠나와서 한국에는 99년에 오셨습니다. 3년 동안 뭐 하셨습니까?
김성민: 한 번 잡혀갔다 왔죠!
조수빈: 중간에?
김성민: 중국에 갔다가 잡혔어요
조수빈: 중국에서
김성민: 짧지만 중국에서 누렸던 자유! 짧지만 중국에서 보았던 남조선 잡지들 이런 것들을 배반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약속한것도 아닌데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렸고... 다시 중국으로 간다라고 생각을하고서 9일동안 북으로 가서 자유를 찾았고 여기와서 부대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부대에서 날짜를 정해놓고 동지 심판(?)을 하려고 군인들을 모아서 준비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탈북하지 않았다면 총살당했을 거예요
조수빈: 아까 99년이라고 시기를 얘기하시니까 당시에 연변 쪽에 많은 탈북민들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때 상황이 지금과는 좀 달라서 누가 내편이고 누가 적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고요

Q. 90년대 중국 인근의 상황은?
동북3성(만주)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남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조선과 접해 있는 지역
김성민: 그때 동북3성은 정말 처절한 체재 경쟁과 통일 활동이 벌어지던 때였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
김성민:그래서 탈북민들끼리 스스로 무슨 얘기를 했었냐면 우리가 지금 이 위치가 남북한 중간 지점으로써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환경이 마련된 시기이다라는 의견들도 나왔고요 북한은 보위부가 거기까지 나와서 탈북민과 공작을 했고요 한국은 국정원이 동북3성에서 활동했고요 그때 브로커들이 탈북민을 모아서 갈 때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회수하고 그중에 누가 간접이 돼서 북한에 신고할지 모르니깐 이런이유들이 있으니까 그 가운데서도 탈북민들과 함께 삶도, 운명도 개척해야 했고 통일을 위한
조수빈: 거기서 꿈이 생기셨네요
김성민: 네 꿈도 생겼고 여러 탈북자들이 그 환경에서 자기 역활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조수빈: 한국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어요?

Q. 한국생활의 시작은?
조수빈: 중국에서 쭉 살 수도 있잖아요
김성민: 중국에 살면서 한국에 있는 삼촌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해방 직후에 아버지는 등단 시인이기 때문에 북한에 떨어져 가정을 이루었고 삼형제중에 삼촌 두분은 할머니 따라 공부하겠다고 서울에 왔어요 삼촌이 중국까지 오셨고 사촌 매부의 손을 잡고
대한민국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죠
조수빈: 아..첩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은데...대학생 기자로 활동하니까 탈북민은 만나보셨죠? 이렇게 자세하게 들어볼 기회가 있었나요?
윤수연: 저같은경우는 북한이탈주민날을 기념해서 열린 윤설미 강사님의 초청 강연을 갔다 왔었는데 그분 같은 경우도 두만강을 직접 넘어온 분이더라고요. 탈북민 중에서 꽤 많은 분이
두만강을 건너는 걸로 알고 있어서 또 이렇게 만나 뵙고
김성민: 탈북자들은 어쨌든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려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야 오죠
조수빈: 그거를 또 엄청나게 못넘어오게 막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김성민: 지금거의 4,000km되는데다가 철조망을 친지는 오래 되었고요 반대편에 한국군은 어서오라고 하겠지만 중국이 철조망을 치고 막고 있어요
최근에는 지뢰까지 묻어놓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기가 더 힘들어지죠
조수빈: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제 한국에 왔습니다. 삼촌의 도움으로 오셨어요
이거 저 오늘 처음 알았어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보좌를 했다
김성민: 우리 그렇게 문자 많이 했는데 그런이야기를 안했나요?
조수빈: 황장엽 선생님하고 친한거는 알았어요 제가 보좌신거는 몰랐어요
김성민: 보좌라기 보다도 제가 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을 할때 황장엽은 탈북자 동지회 명예회장이였어요
조수빈: 그쵸
김성민: 탈북자 동지회를 설립하신 분이기도 하고요 그때 당시에 황장엽 선생님을 꽉 조이고 있었는데
조수빈: 사실 황장엽 선생님이 넘어올때는 약간 주체 사상의 상징과 같은분이 넘어 왔으니 북한체제 무너지겠다 라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김성민: 네
조수빈: 그때 자유북한방송을 만드신거죠?

Q. 자유북한방송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김성민:황장엽 선생님께서 방송의 필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셨고요
첫 방송을 할 때 황장엽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지금도 되새겨보곤 하는데 북한주민들에게 생명줄 같은 방송이다 황장엽 선생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저한테는 선배가 있지 않겠어요? 외교관선배들 같이 식사하는데 뉴스가 나오는 거에요 TV에서 남북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장관급회담이 있었고
첫 번째 사안이 상호 비방 방송을 중단하자 그 방송을 들은 선배들이 우리라도 방송해야하지 않겠느냐 북한주민들이 유일하게 듣는 단파 라디오인데 이거 한국정부가 안하면 우리라도 해야하지않냐? 제가 방송 그런데 그때 제가 방송인이었어요 탈북자사회에서
조수빈: 그래서 저와도 만나셨잖아요~
김성민: KBS 남북의 창, KTV 서울말 평양말 이러니까 탈북자사회에서 볼 때는
조수빈: 유재석이지~~
김성민: “네가 방송 좀 해라” ‘못 해요’ 할 수도 없고 ‘안 해요’ 하기는 더 힘들고 방송하는 것, 직접 출연하는 것과
조수빈: 만드는 건 다르죠!
김성민: 완전 다르죠,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죠
조수빈: 한국에서 탈북민으로 25년을 살아오셨는데요 어떤점이 가장 어려우셨습니까? 물론 좋은점도 많겠지만 어려운점

Q. 힘들었던 점은?
김성민: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최초의 단체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백두한라회라고 해서
남한 청년 50명, 북한 청년 50명 대학생들 위주로 ‘백두한라회’를 만들었고 그때 친목 봉사활동을 했고 황장엽 선생님이 이 소식을 듣고 “탈북자 중에 똘똘한 사람이 왔다는데 데려오라” “황장엽이 뭔데 날 오라 가라 해?”
“당신이 뭔데 오라 가라 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데 직접 손 편지를 보낸셨어요
“알고 보니 동료 교수의 아들이라고 들었네...” 우리 아버지가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을 했거든요 황 선생님은 총장을 하고, 하늘 땅 차이지만... 가서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과 회장을 했어요 그러면 시작부터 탈북자들과의 활동을 활동을 같이했다고 봐야 되겠죠
조수빈: 운명이네요
김성민: 여기까지 왔단 말이에요 그러면 제 인생은 탈북자들과 어울려 살았던 삶이에요
조수빈: 나만 잘 먹고 잘살 수가 없는 거죠
김성민: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솔직히 삼촌도 사업하고 계시고 대만에서 민주 인권상 받을 때는 10만 달러를 받았어요
(10만 달러면? 1억?!)
조수빈: 저한테 밥 좀 사셨어야죠~
(미안)
김성민: 그런 돈을 못 쓰겠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차도 5년 할부, 집도 국민임대
내주변 탈북자 들이 종종 탈북민 지인들이 “우리 밥 안 사주고 술 안 마셨으면 집도 샀겠다”
함께 탈북민들과 함께 사는게 기쁨도 있고 희열도 느끼고 북한사람들과 함께하는게 어떤때는 참 힘들때도 있고요
조수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네요
김성민: 그럼에도 제일 자랑스러운 것은 탈북민 30여 명의 주례를 섰다는 것
(어쩐지 감동...)
김성민: 그리고 탈북민 150여 명의 탄원서를 썼다는 것
저는 그걸 자랑으로 생각해요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던...
조수빈: 북한이탈주민의 날이 제정됐지만 1회고요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탈북민의 마음속에는 불안함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탈북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Q. 지금 한국에서 탈북민에게 필요한 것?

김성민: 언제 어느 때라도 제일 필요한 건 관심과 배려라고 생각해요
대통령께서도 관심과 배려에 대해 강조하시더라고요 이번연설에
과거 탈북민들이 냉면집 사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에서 내려온 애들이 냉면을 하니 먹어줘 그래서 금방 소문이 나고 잘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느날 탈북민들이 많아니고 고난의 시기가 찾아오고 북한사회가 그 땅에서 안좋은 동영상들이 공개가 되면서 저런곳에서 온 애들이 무슨 음식을 만들어 이런 생각이 확산되면서 탈북민이 식당을 하면
계속 망하더라고요
조수빈: 아 그래요? 그러고 보니 북한음식점이 많이 없어졌어요
(몰랐던 사실)
김성민: 그런시기가 있었어요 그건 탈북민들이 우려하던 부분이고 관심과 배려, 사랑이 없다면
탈북민들은 설 곳이 없어요
이런 것들이 한때 활화산처럼 타올랐다가 소강상태에 있다가 이번에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계기로 다시 대한민국 국민에게 요구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국민이 마음을 열고 탈북민들을 안아준다면 정착, 취업, 인권 등 탈북민 사회의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과 배려로 해결되지 않을까...
조수빈: 저와도 인연이 있는 김성민 대표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아프신 적도 있었어요
제가 신문에서 그걸보고 죄송해요 그때 인터뷰중에서 “아직 통일이 안 됐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고병에서 완치되면서 제3의 삶을 사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Q. 앞으로의 계획은?
김성민: 저는 앞으로도 자유북한방송을 끝까지 할 거고 탈북민들과 끝까지 함께 할 거고
물론 어려운 때도 있겠지만 많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인정받고 훈장도 받고 영웅도 되고
그런 날까지 늘 함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수빈: 통일부 대학생 기자도 함께할 준비 되셨나요?
윤수연: 당연합니다 ^^
조수빈: 2회에 걸쳐 자유북한방송 대표님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발을 디디게 되었는지 얼마나 힘겨운 여정을 거쳐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담담은 다음 주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통일 담담

통일 담대한 담화
PD 심영규 / 작가 김혜련 / 촬영 최준우 이호진 이희은 / CG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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